[3월 2일] 시편 71편 - 묵상과 기도

by nasum posted Mar 02, 2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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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송 : 지금까지 지내온 것 (301장)


시편 71편 “ 삶을 주의 연단으로 해석하라 “ 


시편 71편은 어떤 형식을 특정하기가 어려운 시입니다. 한편의 시에 소원, 묵상, 애통, 찬양, 서원등의 다양한 요소들이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단순히 여러 사건들을 짜집기 한 것이 아니라 오늘의 노래가 시인의 삶을 돌아보며 노래했기 때문에 여러 형식이 들어있는 것입니다. 다양한 형식만큼 시인의 삶이 다양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오늘 본문 1절에서 3절까지를 보면 시인은 인생의 황혼기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대적들로 위협을 받고 있습니다. 그래서 주님께 피합니다라고 고백합니다. 6절을 보시면 그의 신앙은 모태신앙입니다. 어머니의 뱃속에서부터 주님을 의지했고 그때부터 주님을 찬양했다고 말할정도로 신앙심이 좋았습니다. 하지만 그의 인생의 여정은 달랐습니다. 아픔이 있고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심지어 황혼의 시기, 인생을 마무리하는 그때까지도 환난은 끊이지 않았습니다.그런 시인이 과거의 인생여정을 돌아보면서 지금까지 함께하셨던 주님을 떠올립니다. 지금의 환난을 이겨낼 힘의 근거를 주님에게서 찾으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지금 그의 고난은 하나님의 부재로 보이기 때문입니다.

7절의 말씀을 보시면 시인을 향한 사람들의 시선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인을 이상하게 봅니다. 왜냐하면 출생전부터 하나님의 도우심과 함께하심속에 있었다고 고백하는 시인의 현실이 4절의 말씀처럼 악인의 손과 불의한 자와 흉악한 자의 장중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1절에서는 하나님이 시인을 버리셨다고 놀림을 받고 있습니다. 그만큼 시인이 경험하는 어려움은 내적으로도 외적으로도 절망할수 밖에 없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하지만 시인은 그때에, 온 힘을 다해 주님을 찾습니다. 7절과 8절의 말씀처럼 주님은 나의 견고한 피난처이십니다. 그래서 종일토록 주님을 찬송하고 영광돌리겠습니다. 라고 고백합니다. 14절에서는 항상 소망을 품고 더욱 더욱 찬송하겠다고 다짐하고 계속해서 주님을 입에 담겠다고 고백합니다. 왜그렇습니까? 지금 죽음의 문턱에 있는 것과 같은 아픔을 경험하고 있지만 그의 인생의 긴 여정속에 함께하시고 이끄셨던 주님을 기억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순간 순간은 아프고 힘들고 절망이었지만 좀 더 시야를 넓히면 측량할수 없는 하나님의 공의와 사랑이 보였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시인의 마음의 고백이 17절의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어려서부터 교훈하셨으므로 내가 지금까지 주의 기이한 일들을 전하였나이다.”

  종교개혁가 칼빈은 이 구절을 이렇게 해석하였습니다. 시인이 어릴적부터 경험을 통해 끊임없이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더 가치있는 일은 없다는 사실을 터득했다. 그래서 주님의 기적을 겸험한 것이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이 결국 정답이라는 것을 시인은 경험적으로 알았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할 단어는 교훈이라는 ‘라마드’라는 단어입니다. 이 단어는 단순한 교육이 아니라 훈련시킨다는 개념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 훈련의 의미는 철저하게 연단의 과정으로 시인은 해석합니다. 즉 시인은 자신의 삶의 굴곡, 순간 순간 경험한 위기를 연단의 과정으로 해석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 연단의 과정이 하나님의 자녀이기때문에 자기를 사랑하셔서 자신을 온전한 주의 길을 걷게하시려는 하나님의 은혜로 바라봅니다.

  같은 관점을 히브리서 기자는 1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내 아들아 주의 징계하심을 경히 여기지 말며 그의 꾸지람을 받을 때에 낙심하지 말라. 주께서 그 사랑하시는 자를 징계하시고 그가 받아들이시는 아들마다 채찍질하심이라 하였으니, 너희가 참음은 징계를 받기 위함이라 하나님이 아들과 같이 너희를 대우하시나니 어찌 아버지가 징계하지 않는 아들이 있으리요. 징계는 다 받는 것이거늘 너희에게 없으면 사생자요 친아들이 아니니라.”

자녀이기에 징계함이 있는 것입니다. 자녀이기에 연단의 과정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인은 삶의 굴곡으로 힘듦을 겪지만 그것으로 힘을 내는 이유는 이 연단을 통해 더 온전한 자녀로서의 모습을 갖춘다고 해석하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시인의 해석이 20절과 21절의 말씀입니다. “우리에게 여러가지 심한 고난을 보이신 주께서 우리를 다시 살리시며 땅 깊은 곳에서 다시 이끌어 올리시리이다. 나를 더욱 창대하게 하시고 돌이키사 나를 위로하소서.” 하나님의 자녀로서 고난이 있지만, 땅 깊은곳에 내려간것과 같은 절망이 있지만 그 자리는 잠시입니다. 주님의 뜻은 그 자리에서 연단받고 훈련받아 더욱 창대한곳으로 우리를 이끄시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러한 과정에 하나님은 우리를 위로하십니다. 연단을 위해 잠시 경험하는 아픔이 주님에게도 아픔이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시인이 노래하는 이 고백이 우리의 고백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의 삶도 시인과 동일합니다. 누구에게나 삶의 굴곡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다르게 해석하기 바랍니다. 시인처럼 이 삶의 굴곡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더 온전한 자녀가 되기 위한 훈련입니다. 더 완벽한 주의 자녀로 살게하시려는 하나님의 연단의 방법입니다. 혹시 지금 삶의 모습이 하향곡선을 그리시는 분이 있다면, 오늘의 말씀을 기억함으로 시인처럼 찬양의 고백이 입술에서 넘쳐흐르는 실제적인 회복이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 기도제목 - 

1. 지금의 삶의 모습이 주님의 훈련임을 깨달아 더욱 의미있는 삶이 되게 하소서

2. 새로 선출된 안수집사님과 권사님을 축복하시고, 그들의 섬김을 통해 교회가 아름다워지게 하소서.

3. 교육 훈련중에 있는 성도들이 이 시간을 통해 주님을 경험케 하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