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18일] 시편 62편 – 묵상과 기도
찬송가 :419장 – 주 날개 밑 내가 편안히 쉬네
시편 62편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시편 62편의 저자 또한 다윗입니다. 표제어를 보시면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여두둔의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합니다. 여두둔이란 다윗이 레위 지파 중에서 찬양대로 봉사하게끔 등용한 사람입니다. 그 사람이 만든 음악적 법칙에 따라 부르는 노래라고 할 수 있습니다.
62편은 특별히 어떠한 상황인지는 기록하고 있지 않습니다. 그러나 내용의 정황상 평탄하기보다 자신을 위협하는 세력에 대한 언급으로 보아서는 다윗이 쫓기는 상황이라고 생각할 수 있지만, 명시되어 있지 않습니다. 인생의 위기 상황을 맞다트린 모든 이들이 이 말씀을 묵상하고 적용하기 더 용이합니다.
1절부터 살펴보지요. 먼저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란다고 합니다. 바란다는 것은 단순히 바라보는 것 뿐만 이 아니라, 얻기 원하는 것이며, 가기 원하는 것이며, 가까워 지기를 원하는 것이죠. 잠잠하다는 것의 반대 개념은 시끄럽고 분주한 것입니다. 마음의 어떠한 걱정이나 번민이 없는 상태에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함께하심, 임재하심을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구원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입니다.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다는 표현입니다.
2절에는 하나님이 나의 구원이시라는 개념을 더욱 풍성하게 표현합니다. 먼저 오직이라는 말로 하나님이 구원의 유일한 근원되심을 이야기합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나의 반석이십니다. 그리고 구원이십니다. 그리고 요새이십니다. 여기서는 하나님을 반석, 구원, 요새라고 묘사합니다. 성경에서는 반석은 물이 나올 수 없는 단단한 바위의 개념으로도 사용되지만, 집을 짓는 기반으로서의 반석의 개념도 있습니다. 여기서는 후자입니다. 바닷물이 몰려오거나 비가 오면 무너지는 모래와 대조되는 개념입니다. 어떠한 비바람이 와도 그 집을 굳건히 지탱해줄 기반으로써의 반석을 말합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그 반석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삶의 기반이시며, 나의 삶을 지탱해주는 유일한 가치임을 선포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구원이십니다. 구원이 무엇인가요? 적의 공격, 죽음의 위협으로부터의 구출입니다. 벗어남입니다. 그것이 생명이고, 살아나는 것이죠. 나의 생명, 내가 살아나는 것은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나의 요새이십니다. 요새는 적으로부터의 공격을 지켜주는 건축물입니다. 난공불락의 요새는 아무리 강력한 적이 쳐들어와도 나의 생명을 지켜줍니다. 바로 우리가 잠잠히 묵상하며 바라보아야 할 하나님이 반석이시며, 구원이시며, 요새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자신이 크게 흔들리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갈 때에 많은 유혹과 공격들이 있습니다. 3절에 보시면 넘어지는 담과 흔들리는 울타리 같이 사람을 죽이려고 일제히 공격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담과 울타리는 굳게 서서 안과 밖을 분리해주는 기능을 하지만 그 담과 울타리가 넘어지고 있습니다. 담과 울타리의 기능과 모습을 상실하는 것이죠. 그렇게 사람을 무너뜨리려는, 특별히 그리스도인들을 무너뜨리는 강력한 유혹과 공격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4절에서 보여주는 것처럼 높은 자리에서 떨어뜨리기를 계획하며 거짓을 즐겨하는 무리들이 있습니다. 입으로는 달콤한 축복처럼, 우리를 위한 말처럼 들리지만 속으로는 그 높은 자리에서 끌어내리는 저주가 있습니다. 하나님과 교제하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높은 자리이며 우리가 있어야할 곳이지만, 그 자리에 있지 못하도록 거짓으로 유혹하는 세력들이 있습니다. 특별히 악인들만 그러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항상 그런 유혹을 받지요. 하나님과 교제하는 것이 기쁨이고 행복이지만, 더 달콤한 것이 있는 것처럼 우리를 유혹합니다. 이 세상의 것들과 순간의 쾌락을 위해 영원한 사귐과 교제를 내려놓게 만들죠.
이러한 공격과 유혹들이 있을 때에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5절에서는 나의 영혼에게 선포합니다.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1절은 바람이여 라고 말합니다. 표준새번역은 ‘기다림은’이라고 말하며, 우리말성경은 ‘기다리는 것은’이라고 말합니다. 즉, 1절은 지금 내 상태를 표현하고 있다면, 5절은 내 영혼을 향한 선포입니다. 지금도 그러하지만 이러한 위기와 어려움 속에 더욱 걱정과 근심과 유혹을 버리고 잠잠히 하나님을 바라보라고 선포합니다. 그리고 그 선포의 근거를 소망이 하나님에게서 나오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우리가 빠지기 쉬운 함정은 눈에 훤히 보이는 큰 함정보다는 눈에 보이지 않는 작은 돌부리인 것 같습니다. 단번에 구원의 확신을 치기보다는 우리의 소망을 조금씩 하나님 외에 것에 두기 시작합니다. 그래서 결국에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지 않고, 당장 눈에 보이는 것들과, 내가 노력하면 얻을 수 있는 것처럼 느껴지는 것에 소망을 두게 합니다. 이러한 유혹 속에서 우리는 우리의 영혼을 향해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께로부터 나오는거야.”
그리고 우리가 버티고 서야할 반석은 하나님이시고, 우리를 적들의 공격으로부터 구원해주시고 지켜주는 요새는 하나님이심을 고백해야 합니다. 그리고 7절에도 나의 구원과 영광이 하나님께 있다고 고백합니다. 세상의 지위나 명예, 물질에 내 영광과 가치가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 있다고 선포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늘을 살아가는 힘, 내가 서야할 반석, 내가 피해야할 피난처도 하나님께 있는 것이죠.
그렇기 때문에 8절의 말씀처럼 우리는 시시로, 언제나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의지하는 대상에게 해야할 것이 바로 마음을 토하는 것입니다. 모든 걱정과 번민과 고뇌를 하나님 앞에 토하는 것입니다. 기도의 자리가 여러분의 마음을 토하는 자리가 되기를 축복합니다.
시인은 인간의 삶에 있어서 하나님의 구원하심과 그분의 능력 앞에 사람의 인생이 얼마나 덧없음을 탄식합니다. 사람은 입김이며 인생도 실체가 없는 속임수와 같아서 저울에 달면 입김보다 가벼울 것이라고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이 없다고 하는 사람들처럼 악을 의지하지 말고, 부당하게 탈취한 것으로 헛된 것을 쫓지 말고 재물이 늘어나도 그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곳에 써야지 거기에 마음을 두지 말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의 모든 능력, 우리가 오늘을 살아갈 수 있는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리고 인자함, 변하지 않는 한결같은 사랑도 하나님께 있습니다. 그 분께서 우리가 하나님을 의지하기를 붙잡기를 기다리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행한 대로 갚아주십니다. 포악을 의지하고 탈취한 것으로 자신의 욕심을 채우고, 재물에 마음을 두는 자는 언젠가 썩어 없어질 그것과 함께 무너지는 마음을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능력과 변함없는 사랑을 가지신 하나님을 바라는 자들은 새힘을 얻고 사랑 가운데 걸어갈 것입니다. 오늘 하루도 새 힘을 얻고 하나님의 사랑 안에서 행복한 하루 되기를 축복합니다.
-기도제목-
1 분주한 가운데에서도 반석과 구원, 요새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도록
2 나를 넘어뜨리려는 공격과 유혹 가운데 흔들리지 않고 하나님을 바라 볼 수 있도록
3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며 살아갈 수 있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