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 주 없이 살 수 없네(292장)
"샬롬의 통치" (욥기 25장)
욥을 향한 세 친구의 세 번째 변론이 25장을 끝으로 마감됩니다. 22장부터 시작된 세 번째 변론에서 소발은 빠지고 엘리바스와 빌닷만이 논쟁을 벌입니다.
오늘 본문은 빌닷의 변론으로 앞선 두 번의 변론에서 처럼 욥 자신의 죄를 회개할 것을 촉구하는데 오늘은 우회적으로 하나님의 크심과 완전함 앞에 옳다 인정함을 받을 사람이 없으니 더 이상 자신의 의를 주장하지 말고 회개하라고 조언합니다.
이를 위해 빌닷은 먼저 하나님의 크심을 고백합니다. 하나님은 주권과 위엄을 가지시고, 높은 곳에서 우리에게 화평을 베푸시는 분이심을 이야기 합니다.(2절) 화평을 베푸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관하여 하나님은 계수 할 수 없는 군대를 가지셨고, 또한 하나님이 비추시는 그 광명을 받지 않는 자가 없다고 이야기 합니다.
이러한 하나님과는 대조적으로 이 땅에 있는 우리 인생의 연약함과 부족함에 대해서 4-6절까지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의 그 절대적인 의 앞에 의롭다고 할 자가 없고, 아무도 깨끗하지 못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달도 빛을 잃고 별도 소용이 없는데 하물며 '구더기와 벌레'같은 인생이야 더 말할나위가 없다고 합니다.
욥의 친구들의 주장은 일면 맞는 부분이 있지만 성경은 그 한 부분이 하나님을 이해하는 전체가 아님을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주권과 위엄을 가지셔서 '평화의 왕'으로 통치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사 9:6-7) 에베소서 2장에서도 결국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이루시길 원하시는 통치가 '샬롬'이며 십자가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와의 막힌 담을 허셨고, 우리 안의 수 많은 나뉨들을 폐하셔서 둘로 하나가 되어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게 하셨다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구원의 통치는 결국 '화평'(샬롬)을 이룹니다. 그런데 빌닷은 이 평화를 위하여 욥이 회개하고 돌아서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이 화평은 우리가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어서 하나님께서 친히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셨음을 말씀합니다. 즉 화평을 이루는 주체가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심을 말씀합니다.
오늘 우리가 바라보고 경험하는 이 세계에 진정으로 필요한 것이 '화평'(샬롬)입니다. 이념과 여러 주장으로 반목하는 대한민국에도 샬롬이 필요하고 나라와 나라들이 대치하는 전 세계 곳곳에도 이 샬롬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이 샬롬은 하나님의 통치로, 특별히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의 결과로 성경은 말씀합니다.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 삶과 공동체 위에.. 대한민국과 열방위에 주께서 이루신 이 평화를 온전히 누리게 하시도록 구하기를 원합니다.
빌닷의 말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피조물 중에도 가장 부패하고 미약한 존재인 것이 사실입니다. 그러나 또한 성경은 이러한 우리들을 완전하시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사랑하고 계시며, 존귀히 여기심을 말씀하십니다. 피조물 중에도 가장 부패한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랑의 대상이 될 수 있습니까?(요 3:16) 이것이 하나님의 사랑의 성품이고,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자들을 품으시고 사랑하시는 하나님. 이것이 사랑의 본질이며, 십자가에서 나타내신 하나님의 사랑입니다. 오늘 십자가를 통해 나타내신 이 놀라운 사랑안에 하나님의 자녀됨을 누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원합니다.
또한 이 놀라운 사랑과 은혜가 준비하는 복음축제를 통해, 우리가 품고 기도하며 초청한 VIP들에게도 함께 누려질 수 있도록 구하기를 원합니다.
-기도제목-
1. 하나님의 '평화'(샬롬)가 개인과 가정, 대한민국과 열방 가운데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통하여 이뤄지게 하옵소서
2. 날마다 십자가 앞에 나아가 그 풍성하신 은혜와 사랑을 맛보는 하나님의 자녀로 이 땅 가운데 살게 하여 주옵소서
3. 이 구원의 은혜가 복음축제를 통하여 VIP들에게도 임하게 하여 주옵소서.
4. 담임목사님을 성령충만케 하셔서 오직 십자가 복음의 전달자로 능력있게 하옵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