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운 친구에게,
사랑하는 싱가폴을 떠나 7월이면 네가 있는 한국으로 이사를 가게 되었어.
기억나니? 대학교시절 우리가 외우고 다녔던 조지훈의 [혼자서 가는 길]이라는 시가 있었지?
"이제는 더 말하지 않으련다..." 라고 시작되는...
감수성 예민하던 그 시절에는 고독과 죽음이란 빠져나올 수 없는, 아니 빠져나오기 싫은 그런
아름답고 치명적인 바다였고 우리는 그 침몰을 나름 즐기고 있었지.
몇일 전에 불현듯 그 시가 떠올랐는데 이제 나에게는 더 이상 이전의 그 의미가 아닐 뿐더러
20년도 더 전에 잠시 좋아하며 외우고 다녔던 그 시가 그 때의 생각들이
지금의 나의 생각과 행동을 동여매고 있었다는 것을 알고는 놀랐어.
너는 깊은 산 고요함 속에서 어떤 명상을 할까? 너는 지금 어디까지 와 있는지 가끔씩 궁금해 질때가 있단다.
나는 이제 더이상 혼자서 가는 길이 아니라 함께 가는 길이야.
그래서 그 시를 다시 써 봤어.
너는 어떠니?
함께 가는 길
이제는 애써 말하련다
구차함이 싫어서 하지 않았었던 말들
허전한 마음으로 돌아가는 길
대제사장의 뜰에서 심문 받으시던 주님이
나를 바라보셨다
마음은 고요하고 잠잠한데
내안 깊은 곳, 깜깜하고 잊혀졌던 그 곳에
빛이 비추고 바람이 불어왔다
그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옳다고 하던 사람들도
다 떠나버렸다
마지막 혼자 남겨질 것을 아시고도
애써 혼자 가신 길
배신과 질시와 포위망을
그림자같이 거느리고도
그 분은 끝내 순종하며
우리의 고독과 죽음의 잔을 삼키셨다
예수.
십자가.
주님, 주님께서 아시나이다.
이제는 애써 말하련다
하나라도 잃어버리지 않으리라는 그 분의 약속
상하고 갇히고 지친 그대에게
목이 찢어지도록 외치리라
더이상 휘청휘청 걷지 않으리라
지지고 볶는 이곳이 더이상 구차하지 않다
가장 고귀하신 그 분이 함께 계신 곳이므로.
사랑의 시를 읽습니다.
그리고 한편 많이 서운합니다.
7월이 지나도 주님안에서 만남이 지속되길 바라고 집사님이 가시는 새로운 곳에서 감사와 찬양이 더욱 넘치길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