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자 훈련 3권 6과 순결한 생활

by 정연보 posted Sep 30,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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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월 29일 남자반 제자 훈련은 두 형제님의 한국 출장으로 소그룹 모임이 되었습니다. 결석하신 두 분은 제자반 형제님들께 따로 보강 수업을 받으셔야 합니다. 일일 선생님으로 자원하신 분들이 혹독한 훈련을 계획중이라는... ^^

먼저 QT를 나누는 것으로 제자 훈련을 시작하였습니다. QT를 하는 방법으로는 한 절, 한 절의 의미를 자세히 묵상하는 방법과 큰 단락에 대한 전체 흐름을 묵상하는 방법이 있는데, 오늘 QT 주제인 에스겔 24장은 후자의 방법으로 접근하는 것도 좋을 듯 합니다. 에스겔 24장의 큰 흐름은 녹슨 가마와 에스겔의 아내의 죽음으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에스겔 24장 1절의 때는 예루살렘 멸망의 시작을 알리며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서 자기들을 버린 것에 대한 원망을 하던 시기입니다.

녹슨 가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자화상이었습니다. 오랫동안 쌓은 죄로 인해서 어떤 행동으로도 해결되지 않는 심각한 죄가 되어 버린 것이죠. 결국,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실 수 밖에 없는 상황을 보여줍니다.  이와같이 에스겔 아내의 죽음은 하나님께서 그토옥 사랑하시던 백성을 잃어버린 하나님의 아픔을 상징적으로 보여주시며 그 당시 사명자였던 에스겔을 통하여 하나님의 아픔을 경험하게 하신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16절: "인자야 내가 네 눈에 기뻐하는 것을 한 번 쳐서 빼앗으리니"). 에스겔 개인의 입장으로는 억울한 일일 수 있으나 어려운 사명을 맡은 에스겔은 하나님께로부터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는 능력도 받았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13절의 음란의 죄란 하나님을 섬기지 않고 미신을 믿었던 백성들의 죄를 비유적으로 말씀하신 것이고, 오늘의 주제인 순결한 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 같습니다.  

오늘의 주제인 순결한 생활은 결론적으로 육체적인 순결만을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조금 더 포괄적으로 말씀이 기준이 되는 삶을 의미합니다. 나의 삶의 기준이 말씀이 되었을 때, 영적/육체적 순결을 지킬 수 있습니다.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아닌, 그 이외의 세상적인 기준이 들어온다면 (예, 세상의 도덕 기준), 교회 안으로 더러운 물이 들어오는 것을 막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 예로 고린도교회에 만연했던 음행을 손꼽을 수 있습니다. 고린도 사회에는 그 당시 유행했던 종교의 영향으로 성행위를 통해 스스로를 거룩하게 하는 사회 풍습과 문화가 일상생활과 밀접하게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래서 고린도 교회내에서도 신도들이 그러한 사회적인 풍습을 따랐기에 음행이 만연했던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결국, 교회의 가치 기준이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그 당시 세상적인 문화 였기 때문에 음행이 죄라는 생각조차도 못했던 것 같습니다. 교회에서의 모습과 사회에서의 모습이 달랐기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고도 할 수 있겠죠. 노아의 증조 할아버지인 에녹과 같이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매 순간 순간마다 살아야된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오늘을 사는 우리들의 모습과도 너무나 비슷해 회개를 하게 됩니다.

여기서 일일이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을 알리고 교육시키기보다 무엇이 진리인지를 아는 것이 더 중요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 가치관의 기준으로 삼으면 모든 육체적/영적 유혹을 구별하고 삼갈 수 있는 능력이 저절로 생기리라 믿습니다. 진리를 알면 진리로 돌아오게 되어 있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다면, 몸을 거룩하게 하려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너무 어렵게 추상적으로 생각할 것이 아니라, 좋은 음식을 먹고 운동을 하면서 좋은 생각 (예, 좋은 음식을 먹을 때, 불쌍한 사람을 생각하고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을 하는 것이 하나님을 모시는 사람으로서 자기 몸을 거룩하게하는 첫번째 단계가 되겠습니다. 먼저 건강한 몸과 좋은 생각을 통해서 몸의 순결을 만들고, 그 후에 종교적인 순결을 찾아야겠습니다. 디모데후서 2장 22절의 말씀처럼 "의와 믿음과 사랑과 화평을 따르라"는 것은 중간 단계인 건강한 몸과 좋은 생각을 만드는 것과 관계가 있겠죠.

마지막으로 믿음의 사람들도 언제든지 신앙의 슬럼프가 찾아 올 수 있습니다. 신앙적으로 힘든 시기가 오더라도 우리가 구원받은 즐거움만 잃지 않는다면, 언제든지 바닥을 치고 다시 신앙적으로 일어설 수 있습니다. 구원의 즐거움은 결국 자원하는 심령이며, 그것은 자발적으로 섬기는 마음입니다. 하루 하루 구원의 즐거움이 커다른 감격으로 다가오시는 형제, 자매님들이 되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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