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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서울 대치동 교회 박명순 권사입니다. 꼭 2년만에 싱가폴을 다시 방문하였습니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 여쭈어 보아야 하는데 이 문안 인사는 생략하려고 합니다. 지난 해 초부터 지금까지 우리는 그야말로 천지개벽이라고 할만큼 미증유의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면서 안녕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성도님들 가정에서는, 잠시 다녀올 요량으로 출국하셨던 가족들이 느닷없는 입국 봉쇄로 별리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들도 있다고 들었습니다. 


저는 아슬아슬하게 지난 4월 28일 한국으로부터 입국해서 호텔 격리 3주를 마친 뒤 지금은 딸 집에서 머물고 있습니다. 그러나 계속되는 엄중한 방역조치로 오늘 처음 나섬교회 대면예배에 참석하였습니다. 고국을 떠난 지 6주 만에...소리내어 찬송도 못 부르고 선포되는 말씀에 아멘! 속엣말만 신음같이 내뱉었습니다. 

문득 지난 격리 기간동안 썼던 글 한 편을 성도님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습니다. 



늘 고팠던 그것들의 정체


박 순


오늘 하루만 잘 견디면 특별한 3주의 감금이 해제된다. 인도발 변이 바이러스 환자 발생으로 모든 입국자들에게 내렸던 2주간의 격리가 3주간으로 연장된 것은 이미 "비싼 감옥"에서 밝혔다. 그런데 사람의 심리란 묘한 것이어서 처음부터 3주간을 알고 시작했던 것과 중간에 선택할 수 없는 명령을 받은 것하고는 엄청나게 달랐다. 

첫 1주일을 보냈던 날, 그 날 이 명령을 받았다. 낭패를 당한 나보다 그 뉴스를 전해주는 딸이 더 심란해서 그 날은 특별식 초밥과 회, 사케까지 사입을 해 주었다. 


몇 달 전 심하게 앓았던 대상포진 후유증이 만만치가 않아서 기운을 추스리지 못하고 있을 때 딸의 이 한 마디가 나를 싱가폴로 흡입했다. 

"엄마, 해 주는 밥 먹으면서 좀 쉬었다 가요."


일흔 다섯 살. 병 끝이라 짐 싸는 일도 수월치 않았고 아무리 편한 좌석에서 좋은 써비스를 받으면서 왔다고 해도 여섯 시간 넘는 비행은 만만치가 않았다. 불과 몇 해 전만 하더라도 비행기 탑승 마감 시간까지 휘젓고 다니며 구경했던 면세점 쇼핑은 먼 옛날의 이야기였다. 엄마를 불러온 딸도, 딸이 보고싶어 힘들에 왔던 나도 서로 얼굴 한 번 마주하지 못한 채 호텔 방 안에서 같혀 3주 동안 격리를 했다. 


특별히 고통스러운 것은 없었다. 식성이 까다롭지 않은 나에게 하루 세 끼니 꼬박꼬박 제공해주는 하얏트 호텔 도시락은 그런대로 먹을 만 했고 시중 들어주는 사람은 출입금지 되었어도 매일 제공되는 뽀송한 타월들, 칫솔과 치약, 목욕 소금과 가운, 그리고 잉글랜드식 모닝차와 커피, 땅콩과 과일. 


젊은 내 딸들은 이렇게 먹고 자고 먹고 잘 수 있는 내 시간이 자기들한테는 한 번 꼭 해보고 싶은 로망 중의 로망이라고 했다. 그네들의 삶이 바쁘고 지쳤다는 뜻일게다. 


영어가 짧은 내게 호텔 방의 TV는 그림의 떡일 뿐.  이 기간 동안 나는 열 편이 넘는 글을 썼고 상당한 분량의 책을 읽었으며 그리고 성경 창세기로부터 요한계시록까지를 완독했다. 이만하면 무익한 시간은 아니었던 것 같은데 나는 늘 무엇인가 고팠다. 늘 고팠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서 새벽바람 가르며 새벽 기도회를 다녀온 뒤 동네 한 바퀴를 걸으면서 느티나무 새순이 꽃보다 더 아름답다고 만져보았던 산책길이 고팠다. 우연히 만난 사람 마주보면서 주절주절 지난 이야기 하던 벤치의 수다가 고팠고,  글 한 편 쓰고 난 뒤 부침개 한 장 부쳐서 누구라도 불러 함께 마시던 막걸리 맛이 고팠다. 그리고 묵은지 김치꼭지 잘라서 쭈욱 찢어 갓 지은 쌀밥 위에 얹어 먹었던 무수리 밥상이 고팠다. 찬란한 햇살 등판에 가득 받으며 마음껏 마셨던 달달한 산공기, 그 바깥 세상이 무엇보다 고팠다. 


그러고 보면 내가 고팠던 것은 수월하게 누릴 수 있는 것, 갑없이 얻을 수 있었던 그저 보통의 것들이었다. 

오늘, 석방되기 전 마지막 코로나 검사를 받으려고 호텔 내에 있는 격리 장소로 나갔을 때 한국 아주머니 한 분을 만났다. 가까이 대화할 수가 없어서 눈짓이 더 많이 오갔는데 그녀는 1차 검사를 받는다고 했다. 

나보다 1주일 더 격리되어야 하는 셈인데 내가 내일 나간다고 했더니 너무나 부러운 눈빛으로 쳐다보면서 마스크 속엣말 "참 좋겠다." 


참 좋은 것, 참 부러운 것, 참 고픈 것... 이 모든 것일이란 것이 별 것이 아닌 그저 보통의 삶으로 누려왔던 것이고 얻을 수 있는 것들인데 우리는 그동안 왜 엄청 불행한 것처럼 부러워하고 가지고 싶어 했을까? 어쩌면 우리는 태생적으로 치료 불가능한 결핍증을 앓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내일 이 곳을 나간다. 비싼 감옥에서 석방되어 결코 비싸지 않는 보통의 삶을 만끽하는 자유를 찾는다. 그러고 보니 특별한 21일의 격리는 무익한 경험이 아니었다는 결산보고를 할 수 있겠다. 


(2021. 5. 18) 


위와 같은 내용의 글 한 편을 탈고했는데 오늘 교회에서 돌아오는 길 또 한 번의 울림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19' 의 경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내시는 마지막 노크인지도 모른다고 말입니다. 제발 가난한 심령이 되라고, 많은 것을 누림으로 감사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보통의 삶이 감동덩어리였다는 고백을 놓치지 말라는 노크를 지금 하시고 있다는 울림 말입니다.


빛의 속도로 클릭해야 대면예배 숫자 안에 들 수 있다는 광클이 성공하면 다음 주일 다시 한 번 나섬교회에 출석할 수 있을 지 제발 그리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강단 너머 흔들리는 나뭇잎을 볼 수 있는 둥근 창이 있는 교회!

이 또한 많이 고팠던 소원이었습니다. 


2021년 6월 6일 주일 


박명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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