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포레스트 검프' 첫 장면에서 '인생은 초콜릿 상자와 같다'는 대사가 나옵니다. 여러가
지 초콜릿이 든 상자 안에서 꺼내든 초콜렛은 그 맛과 향이 다 다르겠죠. 인생의 순간순간마
다 하나의 초콜렛을 먹듯이 다양한 사건과 경험이 채워지고 그런 조각들이 모아져 인생을
채워나가는 것 같습니다.
제가 10년 전에 싱가폴에 왔을 때, 싱가폴이 달콤하고 향긋한 초콜렛일거라 생각하면서 기
대에 부풀어 있었습니다. 새로운 곳에서의 삶에 대한 분홍빛 꿈을 안고 왔었죠.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 꿈은 현실 속에서 산산이 부서졌고, 낯선 타국땅에서의 힘든 적응기가 시작
되었습니다.
30년 이상 같은 지역에서 중고교를 졸업하고, 같은 교회 대학부부터 성장한 친구들과 함께
교회 공동체 속에서 생활하던 저에게 신앙과 삶과 친구와 가정은 다 같은 색이었고, 모든 것
들을 공유할 수 있는 삶이었습니다.
그러나 이곳에의 삶은 나의 생각, 가치관, 신앙의 색채, 심지어 취미와 취향까지도 공유할
수 없는 것들이었습니다. 다양한 삶의 궤적과 스토리를 가지고, 여러가지 신앙의 색채와 배
경을 가진 사람들이 모인 그야말로 100가지 총천연색의 색연필 세트같은 느낌이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함께 자라고 익숙해서 편한 친구들이 있었기에, 나와 다른 사람들과 사귀고 알
아갈 필요가 없었던 곳에서 살았던 저에게 나와 다른 사람들을 받아들이고, 수용하고, 함
께 나누는 것은 참 어렵고 힘든 일이었습니다.
나의 생각과 의견과 신앙이 틀리다는 생각도 못했고, 나와 다른 삶의 모습을 소중히 여길 줄
도 몰랐고, 낯선 가치관과 신앙의 모습에 대한 배타적인 생각이 가득했었습니다. 때문에 새
로운 환경에적응하기도 어렵고, 더 외로워지고, 스스로 갇혀서 힘들어했던 시간들이 참 오
래도록 지속되었습니다.
내가 왜 이 땅에 와서 이런 어려움들을 겪고 외로움과 싸워야 하나를 곰곰해 생각해봐도 이
유도 모르겠고, 빠져나올 방법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그러나 신실하신 하나님께서는 그런 과정을 통해 저의 굳어진 자기 중심적인 사고와 교만
한 신앙의 모습과 나와 다른 사람들을 향한 닫혀진 마음들을 깨뜨리셨습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공동체는 나와 비슷하여서 편하고, 나의 생각이나 가치관이나 신앙
과 동일해서 굳이 내것을 깨뜨릴 필요가 없는 사람들과 끼리끼리 즐거워하는 모습이 아니
었습니다. 오히려 나와 너무 달라서 내것을 내려놓고 상대방의 것을 받아들여야만 하는 전
혀 다른 사람들과의 연합, 나를 깨뜨려서 영역과 사고를 넓혀야 함께 할 수 있는 사람들을
향한 수용, 더 나아가 문화와 언어가 다른 사람들까지도 품을 수 있는 사랑이 있는 공동체라
는 것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런 모습이기 위해서는 나를 내려놓아야 했고, 내것을 양보할
줄 알아야했고, 내가 옳지 않다는 것을 인정해야 했고, 나의 바운더리를 깨뜨려 넓혀야 했습
니다.
2015년 제자반은 그 다름이 모여서 내는 하모니가 얼마나 아름다운지 경험할 수 있었던 귀
한 시간들이었습니다. 처음엔 서로가 다름을 경험하고 맞추느라 시간이 필요했으나 나중에
는 그 각기 다른 색채들이 모여 너무나 아름다운 퍼즐이 완성되는 모습을 보며 참 감사하고
행복했었습니다.
2016년 여선교회 모임도 그런 아름다운 하모니를 맛보고 경험하는 시간들이 될 것을 기대
합니다. 한 사람도 똑같이 창조하지 않으신 하나님의 놀라운 창조의 아름다움을 서로 다른
한 사람이 모여 공동체를 형성하면서 더 풍성하게 경험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