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싱가폴에 온 지 10년이 훌쩍 지난 딸 셋 - 샘, 봄, 참 - 의 엄마입니다. 첫째 샘이만 파리에서 태어났고
봄이와 참이는 싱가폴에서 태어난 딸 들 입니다.
제 남편은 프랑스계 유태인 입니다. 시댁이 종교적인 분위기가 아니라서 그런지,
별 어려움 없이 개종의 압력도 없는 채 이방인 여자와 결혼했습니다.
여러분이 함께 기도해 주셨던 둘째 아이 봄이의 이스라엘 5주 입원기를 들려드릴까 합니다.
지난 겨울방학 - 남편의 이종사촌이 사는 이스라엘에서 사촌 조카의 유태인 성인식 (Bat Mitzvah) 이 있었던 관계로
전 세계에서 가족들이 백 명 가까이 모인 자리였습니다.
사흘동안 벌어진 잔치가 끝나고,
봄이가 머리를 쥐어짜는 두통을 호소하면서 심한 구토를 한 것은 일요일 밤 - 홍해앞 휴양지 Eilat 에서 였습니다.
그 날 먹은건 다 토한거 같더니 바로 깊은 잠에 빠져들더군요. 호텔방으로 의사가 오고 워낙 건조해서 몸에 수분이 떨어지면
두통을 호소하며 토하는 경우가 있다고 했습니다.
친척중 미국에서 온 응급실 의사 둘 중 한 명이 저희와 함께 근처 병원의 응급실로 동행했습니다.
아침까지 지켜보다가 열도 안나고 두통과 구토이외에는 눈에 띄는 뇌신경계 증상도 없어서 바로 퇴원했습니다.
화요일 아침 다시 병원에 갈 때 까지 아이는 피곤하다며 잠만 자려고 하고 억지로 권하지 않는 이상 먹지도 마시지도 않더군요.
걱정이 된 남편이 마침 그 동네로 출장 온 이스라엘의 가장 권위있는 neurologist 중 한 명에게 연락을 해서 병원의사와 통화하게
했는데, 결론은 가서 쉬라는 것이었습니다. CT scan 은 radiation 이 좋지않으니 위급한 상황이 아니면 할 필요가 없다며...
그 날 아침 남편이 봄이를 데리고 병원에 갔고 저는 나머지 둘과 가족들을 따라 홍해 유람선을 탈 예정이었습니다.
그런데 아침부페에서 봄이를 본 시누이가 저에게 다가오더군요.
뭔가 이상하다고 - 그 때까지 사실 저희 부부는 애가 먹지도 않고 피곤해서 쉬려고 한다고 생각했었습니다.
유람선을 타라는 남편 말을 듣지 않고 호텔에서 봄이와 남편을 기다렸습니다.
방에 들어가서 또 자려고 하는 애를 보며 남편과 공방을 벌인 후 바로 핸드백만 챙겨서 공항으로 함께 갔습니다.
한 시간 후 Tel Aviv 로 출발하는 비행기였는데 security line 이 무척 길더군요.
남편과 언성을 높이며 예외없이 너희도 줄서라던 안전요원이 제가 울먹이며 설명하자 바로 줄을 통과하게 해 주었습니다.
그렇게 무사히 비행기를 탔지만 아직 도착해서 어느 병원으로 가야할 지 모르는 상황이었습니다.
남편은 여기저기 전화를 해 댔고 - 직업상 나라별로 neurologist network 가 있습니다 - 한시간도 안 걸리는 비행동안 연락이 되어서
바로 Sheba 병원 응급실로 갔습니다.
어느 병원이나 그렇듯이 위에 아는 의사가 있으면 모든 절차와 검사가 지연없이 착착 진행되나 봅니다.
덕분에 봄이는 바로 CT scan 을 받았고 출혈이 뇌 조직으로 스며들기전에 아직 뇌척수액 공간에 있을때,
비교적 간단한 drainage 수술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봄이는 덕분에 멀쩡합니다.
저는 이스라엘로 저희를 보내신 것도, Eilat 에서 먼 친척중 응급실 의사를 만나게 하신 것도,
급하게 짐도 안 꾸리고 Tel Aviv 로 떠나게 하신 것도, 이스라엘 최고의 뇌신경외과 의사들에게 둘러싸이게 해 주신 것도
모두 하나님이라고 믿습니다.
봄이가 있는 어린이 중환자실에는 주로 아기들과
며칠 전 로컬신문에 난 차 폭파 테러사건의 피해자 12세소녀가 함께 입원해 있었습니다.
소녀의 아버지는 귀에 붕대를 감고 드나들고, 아기들 병동에는 수시로 수염 긴 랍비들이 들락날락 합니다.
그들을 보면서 저는 이방인이 아니라 집에 온 것 같았습니다.
시선이 따뜻하고 서로 안타까운 동지애가 있습니다.
다혈질이고 정이 많으며 공동체 의식이 강하고 남의 일에 끼여들기 좋아하는 오리엔탈 문화를 보면서
우리나라 사람들이랑 참 비슷하다고 여겨졌습니다.
긴 입원 기간동안 받은 온갖 검사와 가슴 졸이는 회복과정의 up & down 을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단에 올려놓은 생각을 하며,
어차피 봄이는 우리딸이 아니고 그 분의 딸이니 모든 것을 맡겨야 한다는 생각으로 버텼습니다.
만족스러운 회복결과로 퇴원을 한 봄이는 싱가포르로 돌아와 별 탈 없이 학교에 잘 다니고 있습니다.
아직 몇 달은 계속 지켜보고, 의사도 꾸준히 만나야 하지만
가장 급한 고비를 여러번 무사히 넘기게 해주신 하나님을 믿으며 하루하루 감사히 살고 있습니다 ~
먼 이국땅에서 얼마나 놀라고 힘드셨을까.. 저희는 그 소식을 특새때 듣고 함께 기도했음이 다시금 기억납니다.봄이가 앞으로도 주안에서 더욱 건강하고 아름답게 자라기를 기대합니다.
귀한 글 나눠주셔서 고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