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의 이야기는 하나님을 만나서 구원받고, 하나님과 함께하는 삶을 살라고 말하고 있다. 그렇게 살면 복음이 움직이는 삶을 살 수 있다.
성경에서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롬 1:17) 함과 같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의인은 예수 그리스도로 살아야 된다. 말씀으로 사람이 거룩하게 되고, 그리스도인으로 살게 되는 적용은 성도의 삶의 현장에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것이다.
결국 성경 전체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삶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나타내라는 것이고, 환경의 어려운 시험들을 통해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가 삶의 현장에 적용되어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남기는 인생은 복된 인생이다. 내가 죽고 예수가 사시는 산제사로 적용하면 그리스도가 나타난다.
결국 성경 전체의 내용은
예수 그리스도를 말씀하고 있다.
바울은 많은 은사를 받은 선교사로, 선교 여행 중에 많은 사람들의 질병을 고치기도 했다. 심지어 그의 손수건이 병든 사람에게 닿기만 해도 질병이 나았다.
그에게도 육체의 가시가 있었다. 그래서 자신의 연약함을 위해 세 번 기도했다. 그러나 주님의 응답은 연약한 상태로 살아가라는 거였다.
선교여행 중에 유두고를 살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했으면서도, 그는 사람을 살린 간증보다 기도를 했음에도 자신의 연약한 질병을 고침 받지 못한 은혜의 간증을 장황하게 말한다.
죽은 사람을 살린다 해도 그런 그리스도의 능력은 떠날 수 있다. 반면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간증은 질병을 고치는 게 아니라, 질병을 고친 사람에게 그리스도가 가장 큰 능력으로 머물러 계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바울은 그리스도를 위해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핍박과 곤란을 기뻐했다. 도대체 그 이유가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약할 때 그리스도의 능력이 머물러 가장 강하게 역사하시기 때문이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간증이
그리스도여야 한다고 말한다.
우리는 간혹 가난하게 살다가 부자가 되는 걸 예수 잘 믿은 간증으로 여긴다. 그러나 세상에는 예수 안 믿고도 부자가 되는 경우가 허다하고, 불신자들 중에는 신자보다 훨씬 더 큰 부자가 많다. 또 질병으로 고생하다가 고침 받은 것을 간증으로 말한다. 그리고 부족한 몇 가지를 채움 받는 것이 기도 응답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성경은 우리의 간증이 그리스도여야 한다고 말한다. 가난할지라도 예수를 잘 믿어 “아멘” 할 수 있기를 원한다. 예수 믿고 부자 되는 게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나타나는 삶을 살기를 원한다.
성경은 가난하게 살라고도 부자로 살라고도 하지 않는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 살라”라고 말한다.
예수 잘 믿으면서 질병에 걸릴지라도 바울처럼 “아멘”하기를 말씀하고 있다. 건강하게 살라는 것도, 질병에 걸려 고생하라는 것도 아니다. 오직 예수 믿음으로 살라는 것이다.
때로는 예수를 잘 믿는데도 부족할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는 예수를 잘 믿으면 부족한 것이 없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시 23:1)라는 말씀처럼 부족함 없는 인생을 살게 된다.
약할 때 강함 되시는 그분으로 인해 가난해도, 질병에 걸려도, 부족해도 “아멘”하는 게 삶의 가장 큰 묵상이며 적용이 된다.
-도전! 성경 1000독, 조상연, 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