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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그 큰 일을 행하신 (찬송615장)

말씀 : 미가 1장 1~16


하나님께서 그 처소에 계시지 않고 나오신다면 일어날 일을 오늘 미가 선지자가 기록하고 있습니다. 상징적인 표현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처소에서 나오신다는 표현은 굉장한 두려움을 줍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사람에게는 아무런 문제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셔서 우리가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을 하나님께서 알아주시고 보듬어주시고 싸매어주시고 위로해주실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상관없이 살아가는 악한 백성들 그들에게는 곧 심판이 주어질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시기 때문입니다. 오늘 미가 1장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시면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그리고 우리는 처소에서 나오시는 하나님을 어떻게 맞이해야 할지, 오늘 말씀을 통해서 함께 깨닫기를 원합니다. 

미가 선지자는 남유다에서 예언했습니다. 그가 예언했던 시대를 이렇게 정리합니다. 1절을 보십시오. 


"유다의 왕들 요담과 아하스와 히스기야 시대에 모레셋 사람 미가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 곧 사마리아와 예루살렘에 관한 묵시라"


미가는 요담, 아하스, 히스기야 시대 때 남유다에서 예언했습니다. 동시대에 함께 예언했던 선지자가 있는데 그분은 이사야 선지자입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왕족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실과 가까웠고 주로 왕실을 중심으로 예언했습니다. 하지만 미가 선지자는 백성들 사이에서 예언했습니다. 미가는 남유다에서 예언했지만 또한 멸망 직전에 놓여 있는 북이스라엘을 향해서도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북이스라엘을 멸망시킨 앗시리아가 남유다를 향해 쳐들어오기 위하여 호시탐탐 노리고 있던 것에 대해서도 예언했던 선지자였습니다. 

그는 이렇게 말합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처소에서 나오실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3절과 4절입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처소에서 나오시고 강림하사 땅의 높은 곳을 밟으실 것이라 그 아래에서 산들이 녹고 골짜기들이 갈라지기를 불 앞의 밀초 같고 비탈로 쏟아지는 물 같을 것이니"


하나님께서 처소에서 나오시면 심판이 일어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 그 처소에서 참으시다가, 죄많은 세상의 답답한 일들을 하나님께서 참고 참으시다가 이제는 내가 나가서 이 악한 백성들을 다 멸하고 심판해야 하겠다 작정하시고 하나님께서 나오셨습니다. 하나님이 나오셔서 그 산들을 밟으시면 모든 것이 물같이 녹아져 내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심판하시고, 또 그 심판하시는 대상이 누구인지를 명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5절입니다. 


"이는 다 야곱의 허물로 말미암음이요 이스라엘 족속의 죄로 말미암음이라 야곱의 허물이 무엇이냐 사마리아가 아니냐 유다의 산당이 무엇이냐 예루살렘이 아니냐"


하나님께서 그 처소에서 참지 못하고 나오시는 이유는 야곱의 허물, 그리고 또 유다의 산당 때문입니다. 야곱의 허물이 무엇입니까? 사마리아라고 말했습니다. 사마리아는 북이스라엘의 수도입니다. 그런데 이 사마리아는 죄악된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살던 가장 더럽고 추악한 도시였습니다. 여로보암 1세때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를 세우면서 북이스라엘이 시작되었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 흘러갈수록 북이스라엘 온천지 사방이 다 금송아지 우상과 바알우상으로 다 뒤덮혔습니다. 사마리아 성에는 정치지도자와 종교지도자들이 그들의 욕망을 숭배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했던 것처럼 그들은 그 자리에서 자기들의 종교성을 과시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돈을 가지고 이곳 저곳을 다니며 하나님께 예배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정의와 공의를 상실했습니다.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물질과 부와 명예를 백성들에게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성지순례를 다니기는 했지만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나누는 것에는 인색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것을 야곱의 죄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을 야곱의 허물이라고 말씀하시고 이제 곧 사마리아에 불어닥칠 피바람을 예고하셨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이 유다의 산당이 예루살렘이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산당과 예루살렘은 사실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 조합입니다. 예루살렘에는 성전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토록 사랑하셨던 성전, 유다백성들이 가슴 뿌듯하게 자랑했던 솔로몬 성전이 예루살렘이 있습니다. 그런데 왜 유다의 산당을 예루살렘 성전과 똑같이 취급하신 것일까요? 

산당이 어떤 곳입니까? 그 당시 미가 선지자가 예언했던 시절의 산당은 크고 작은 우상들을 두고 자신들의 욕심을 위해서 경배하고 숭배했던 곳입니다. 말 그대로 산에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산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도시마다 마을마다 있었습니다. 자신의 욕망을 숭배하는 사람들은 가까이 있는 산당에 가서 예배드렸습니다. 

시간이 흘러가면서 산당과 성전의 구별이 모호해지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성전에 가서도 자신의 욕심을 아룁니다. 돈을 많이 가지고 제사장에게 가져다줍니다. 돈 많이 버는 방법을 가르쳐주십시오. 출세하고 싶습니다. 건강하게 오래도록 살고 싶습니다. 그들은 성전을 마치 산당처럼 여기고 살았습니다. 

성전은 하나님을 섬기는 곳입니다. 성전에 나와서 회개하는 곳입니다. 자신들의 죄를 회개하고 잠잠히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곳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가리켜 내 아버지께 기도하는 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성전은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께 기도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귀담아 듣고 내가 어떻게 살아야 될지 방향을 정하는 곳이 성전이었습니다. 

그런데 미가선지자 당시 백성들은 성전을 마치 산당처럼 여기고 살았습니다. 이건 심각한 죄가 아닐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이런 자들의 죄를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먼저 사마리아의 죄를 하나님은 심판하십니다. 6절과 7절을 보십시오. 


"이러므로 내가 사마리아를 들의 무더기 같게 하고 포도 심을 동산 같게 하며 또 그 돌들을 골짜기에 쏟아내리고 그 기초를 드러내며 그 새긴 우상들은 다 부서지고 그 음행의 값은 다 불살라지며 내가 그 목상들을 다 깨뜨리리니 그가 기생의 값으로 모았은즉 그것이 기생의 값으로 돌아가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마리아의 즉 북이스라엘의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얼마지나지 않아서 앗시리아 군대의 말발굽에 짓밟힐 것입니다. 그들이 벧엘과 단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워둔 사마리아 모든 지도자들의 죄악을 하나님은 철저하게 심판하셨습니다. 

그리고 또한 유다의 산당을 예루살렘의 성전처럼 만들어 버린 남유다 백성들에 대해서도 하나님은 심판을 예고하셨습니다. 그 심판 때문에 미가선지자는 벗은 몸으로 다니면서 마치 미친 사람처럼 곧 우리에게 임할 심판이 이런 것이다! 곳곳을 찾아다니며 백성들에게 호소하고 있습니다. 8절과 9절입니다. 


"이러므로 내가 애통하며 애곡하고 벌거벗은 몸으로 행하며 들개 같이 애곡하고 타조 같이 애통하리니 이는 그 상처는 고칠 수 없고 그것이 유다까지도 이르고 내 백성의 성문 곧 예루살렘에도 미쳤음이니라"


성전을 자신의 욕심을 숭배하는 산당처럼 만들어버린 남유다를 하나님은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때문에 선지자는 마치 미친 사람처럼 벌거벗은 몸으로 다니면서 백성들에게 우리가 성전을 이렇게 만들지 말자! 우리가 하나님의 성전을 이렇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임박한 심판이 우리 코앞에까지 닥쳤다. 예고하고 애통하며 울고 있습니다. 성전은 이스라엘 신앙의 최후 보루였습니다. 그 성전이 우상숭배와 정욕으로 가득찼을 때 하나님은 그 나라의 역사도 마감하게 하셨습니다. 

이것은 오늘도 같은 이치가 적용됩니다. 교회가 우리 신앙의 최후 보루입니다.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은 성도들을 거룩하게 하십니다. 신앙을 보존시키십니다.

교회는 제자를 세우고 또 복음 증거하는 베이스 캠프입니다. 

이 교회가 우리의 욕심으로 채워진다면 당연히 희망이 없습니다. 

교회를 통해서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제자들이 세워져야 합니다. 말씀이 증거되어져야 합니다. 물이 바다 덮음 같이 여호와의 영광이 온 땅에 덮이도록 교회는 거룩한 전초기지가 되어야 합니다.

온라인으로 예배를 드릴지라도 우리는 교회가 제자 삼는 사명을 감당하는 기능이 멈추지 않도록 해야 합니다. 복음 증거하는 사역을 교회가 계속 감당해 나가도록 우리는 계속 교회를 세워나가야 합니다. 


어차피 교회는 건물이 아닙니다. 건물이 사라지더라도 교회의 기능과 역할이 존속되도록 우리는 더 많이 고민하고 더 많이 헌신해야 할 시점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나태함과 이기적 개인주의 때문에 교회가 기능을 잃어 버리지 않도록 

깨어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마지막 희망입니다. 교회에 나와서 우리는 우리의 욕심을 숭배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께 간절하게 기도드리고 회개하는 곳입니다. 나의 잘못을 회개하고 돌이키고 그곳에서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이제 다시 그렇게 살지 않겠습니다 결단하는 곳이 성전, 우리가 하나님께 예배하는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그 옛날 유다백성들이 그랬던 것처럼 교회를 산당처럼 바꾸는 것입니다. 

이 말씀처럼 성전을 산당처럼 우리의 이기심과 개인적인 성취를 위한 집단으로 만들지 마시고 오직 하나님이 뜻이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하나님 나라의 첫 발자국으로 교회를 교회답게 세워가는 지혜로운 하나님의 백성들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기도


1) 교회가 우리 개인의 편리함과 나태함, 그리고 이기심으로 채워져 교회의 기능이 멈춰지지 않기를 소원합니다. 


2) 교회를 통해서 하나님의 뜻이 계속 이 땅 위에  이루어지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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