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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나의 믿음 약할 때 (찬송374장)

말씀 : 아모스 5장 1~27



오늘 읽은 아모스5장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아모스 선지자를 통해서 북이스라엘의 고위 공직자들, 영적 지도자들에게  바로 이와 같은 맥락에서 말씀하십니다. 

당시 아모스 선지자가 예언하던 시절에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2세의 경제적 황금기를 누리고 있었습니다. 돈이 모였습니다. 무역이 잘 되어서 부자들에게 돈이 많이 흘러 들어갔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바로 그들의 투명한 도덕성과 정직한 윤리의식이 없었다는데 있습니다. 그들에게 들어온 돈을 흘려보내지 않습니다. 백성들과 함께 나누려 하지 않았습니다. 부는 몇몇 사람들에게 집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 부분을 집중적으로 책망하시고 성토하셨습니다. 흘려보내라. 흘려보내야 너희들이 살 것이다. 말씀하셨습니다. 5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 하셨나니"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를 언급하십니다. 벧엘과 길갈은 4장에서도 나왔던 지명입니다. 그 당시 북이스라엘의 백성들에게 벧엘과 길갈 그리고 브엘세바는  반드시 순례해야 할 성지처럼 여겨졌습니다. 벧엘은 야곱과 관련있습니다. 야곱이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외삼촌 집 밧단아람으로 가던 길에 벧엘에서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밧단아람에서 돌아오는 길에도 벧엘에서 다시 하나님을 만납니다. 

그때부터 벧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영적인 고향과 같은 곳이 되었습니다. 반드시 순례해야 할 성지였던 것입니다. 길갈은 또 어떻습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땅을 정복할 때 요단강을 건너서 만났던 첫 번째 장소가 길갈이었습니다. 요단강을 건넌 기념으로 각 지파별로 돌을 하나씩 가져다가 그 열 두 돌을 세웠던 곳 그곳이 길갈이었고 할례언약을 실행하면서 애굽의 수치를 물러가게 했던 곳이었습니다. 벧엘과 길갈은 북 이스라엘 지경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누구든지 형편만 되고 시간만 되고 마음만 먹으면 북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제든지 찾아가 볼 수 있는 곳이었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브엘세바입니다. 브엘세바는 남왕국 유다 땅이었고, 또 유다엫서도 가장 남쪽 끝에 있는 도시였습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 사람들은 마음을 먹어도 갈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브엘세바 가장 남쪽으로 갈 수 있다는 것은 그들이 높은 고위직에 있다는 증거입니다. 여기까지 갈 정도로 그들의 위세가 대단했던 것입니다. 브엘세바는 누구와 관련이 있습니까? 아브라함과 이삭과 관련이 있는 곳입니다. 아브라함이 말년에 이삭을 낳고 그곳에 정책해서 오랫동안 살았습니다. 이삭도 아버지가 떠나고 나서 그가 가정을 이끌 때 브엘세바에 가서 머물렀습니다.

이삭이 그곳에서 블레셋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습니다. 너의 사는 모습을 보니 하나님이 살아계신 것을 알겠노라. 그리고 이삭에게 언약을 맺자고 아비멜렉 왕이 요청을 합니다.  브엘세바라는 이름의 뜻은 맹세의 우물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북이스라엘의 돈 있는 사람들, 권력있는 사람들, 이름있는 사람들은 자기 지경에 있는 벧엘과 길갈을 자주 드나들었고 자신의 위세를 떨치기 위해서 남쪽 유다에 있는 브엘세바까지 가서도 순례했던 바로 그런 곳이었습니다. 그들은 그곳에 가서 십일조를 합니다. 하나님께 예배를 드립니다. 낙헌제와 수은제를 드리면서 감사의 예배를 드렸습니다. 좋은 일이지요. 잘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돈과 부를 흘려보내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는 굉장한 죄였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너희는 성지를 찾지 말고 나를 찾으라. 성지순례하느라고 돈쓰지 말고 나를 찾으라 말씀하십니다. 4절 말씀을 보십시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6절도 보십시오. 함께 읽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


그들은 성지는 열심히 찾아다니고 있는데 하나님을 찾을 생각이 없었습니다. 벧엘과 길갈과 브엘세바는 찾으나 하나님은 찾을 생각이 없는 자들. 그런데 여기서 하나님을 찾는다는 의미가 어떤 뜻일까요? 우리는 흔히 이렇게 생각합니다. 하나님을 찾는다는 것은 기도 많이 하는 것이고 예배 열심히 드리는 것이고 종교생활 열심히 잘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아모스 본문의 맥락에서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런 맥락이 아닙니다. 물론 그것도 중요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정의와 공의의 관점이었습니다. 7절을 보십시오. 


"정의를 쓴 쑥으로 바꾸며 공의를 땅에 던지는 자들아"


정의와 공의는 선지자들이 공통적으로 외치는 덕목이었습니다. 정의는 미슈파트, 공의는 체다카입니다. 미슈파트는 자기 중심의 정의가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을 중심으로 하는 정의를 말하는 것입니다. 체다카는 관계를 의미하는데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지극히 사랑하셨던것 처럼 우리도 주변 이웃들을 섬기며 사랑해야 함을 체다카의 공의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돈이 많은 사람들이었습니다. 권세도 있고 명예도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문제는 정의도 없고 공의도 없는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에 근거한 정의는 자신들이 가지고 있는 물질을 흘려보내는 것입니다. 주변에 있는 가난한 자들을 섬기고 돌보는 것입니다. 그것이 정의고 그것이 공의였습니다. 하지만 이들은 정의나 공의를 지킬 생각이 없는 자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다시 한번 이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지킬 것을 말씀하십니다. 24절을 보십시오. 함께 읽습니다.


"오직 정의를 물 같이, 공의를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흐르게 할지어다"


정의는 우리에게 꼭 필요한 물과 같이 있어야 할 것이고 공의도 흘러 내려가야 하는 마르지 않는 강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나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공의가 흘러가서 주변 이웃들에게 넘치는 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정의도 항상 존재하는 물같이 우리 주변에 넘치는 강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들은 어떻게 살고 계십니까? 하나님께서 오늘도 우리를 통해서 오늘도 우리 개인들을 통해서 하나님을 찾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을 찾는 것은 그러므로 정의와 공의를 전하고 외치는 것입니다. 


요즘은 세상이 좋아졌습니다. 우리가 직접 성지순례를 갑니다. 이스라엘에 가서 예수님이 자랐던 곳, 예수님이 십자가 고난 받으신 곳을 우리도 함께 오르며 예수님의 고난을 묵상합니다. 사도 바울이 선교여행을 했던 곳을 직접 답사하며 다닙니다. 배를 타고 지중해 바다를 건나다니면서 밧모섬에도 들어가봅니다. 종교개혁지를 가봅니다. 루터와 칼빈의 행적지를 우리가 직접 답사하기도 합니다. 돈만 있으면 시간만 있으면 얼마든지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성지는 열심히 찾아다니는데 과연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 원하시는 정의와 공의는 행하고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예배드리라고 한 이 성전에는 열심히 드나들었는데 그런데 과연 가난한 자들의 삶의 형편은 성전에 들어오는 열심만큼 부지런히 살폈는가? 


지금 이 시절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성전에도 오지 못하고 이스라엘 성지에도 가보지 못하는 시절이 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되고 나니 이제 우리가 다시 한번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이 더 절절히 가슴에 와닿습니다. 이럴 때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가 주변 이웃들에게 물 같이, 마르지 않는 강 같이 흘러 내리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도움의 손길, 베품의 손길, 나의 사랑의 손길이 머물러야 하는 그곳에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사랑의 나눔이 함께 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너희들은 나를 잘 찾고 있구나. 정의를 행하고 공의를 행하는 나의 백성들이여 나도 너희들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겠노라. 이 하나님의 놀라운 사랑의 언약을 오늘도 기억하시면서 살아가시는 복된 날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1) 신앙적으로 돈을 벌게 하시고 또한 믿음으로 돈을 사용하는 크리스찬이 되게 하소서.


2) 내가 믿음이 깊어질수록 주변 사람들에게 정의와 공의를 흘려보내는 선한 영향력을 갖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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