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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나 속죄함을 받은 후 (찬송283장)

말씀 : 마태복음 1장 1~25


오늘 우리가 읽은 마태복음 1장에 본문은 신약성경 전체의 맥락을 잡는 작업입니다. 우리가 구약의 말라기 4장이 끝나고 한 장만 넘겨서 신약 마태복음 1장을 읽었습니다. 한 장 차이이지만 역사의 흐름으로 보면 말라기에서 마태복음으로 넘어오는 과정은 결코 순탄한 과정은 아니었습니다. 기간 짧지 않습니다. 

무려 약 430년의 시간이 흐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라기 선지자를 보낸 이후에 길고 긴 침묵의 시간을 보내셨습니다.

말라기 4장에 내가 엘리야를 보내겠다 말씀하신 이후에 선지자가 나타나지 않았습니다. 세례 요한이 출현할 때까지 길고 긴 침묵이 흘렀습니다. 페르시아 시대를 거쳐 알렉산더의 제국을 지나 알렉산더의 부하들로 나뉘어진 제국의 시대를 거쳐 로마 시대에 이르기까지 세계사의 흐름은 430년이 흘렀습니다. 

그동안 하나님의 역사는 마치 멈추어진 것처럼 길고 긴 어둠의 터널을 지나왔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하나님의 말씀이 임하고 새로운 신약의 시대가 열립니다. 

이렇게 신약의 시대가 열릴 때 구약을 한번 정리하고 예수께서 오셔서 앞으로 일으키실 사역과 역사는 이러하다 이러하다고 맥락을 잡아주는 것이 무척 중요합니다. 바로 그 작업으로 족보를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족보를 살펴보면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실 사역이 이 안에 다 축약되어 있습니다.

구약 이사야 선지자는 예수께서 오시기 약 700여 년 전에 메시야에 대해 예언했는데 그로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메시아의 도래와 탄생을 간절히 바랬습니다. 

예수께서 오시면 어떤 일이 일어날 것인가? 우선 정치적으로 그분은 우리를 해방시켜 주실 것이고 그분이 오시면 새 하늘과 새 땅이 창조될 것이고, 우리가 지금 이렇게 핍절한 인생을 살고 있는데 좀 더 나은 인생을 살 수 있을 것이다. 

이런 강렬한 소망을 가지고  메시아를 대망해 왔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기대했던 메시아와 실제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들이 착각을 했던 것이지요. 잘못된 메시아 대망 사상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족보를 통해서 예수께서  왜 오셨는지 또 그분의 하실 일이 무엇인지를 분명하게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우선 1절을 보시겠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계보라"


예수 그리스도는 이 땅에 인간의 옷을 입고 오셨기 때문에 수많은 인간 조상들을 두고 계셨습니다. 그런데 수많은 인간 조상들 중에 유독 아브라함과 다윗을 대표로 내세우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아브라함은 하나님께서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부르시고 하란을 가나안 땅에 정착하게 하셨습니다. 원래 아브라함의 이름은 아브람이었습니다. 아브람이라는 이름의 뜻은 존귀한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즉 한 마디로 이야기하면 한 가정을 이끄는 가장으로서 존귀한 아버지, 마음이 따뜻하고 좋은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람의 이름을 개명시켜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으로... 아브라함의 이름의 뜻은 열국의 아버지라는 뜻입니다. 즉 세계 만방에 아버지가 될 것이라는 이름의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알 듯 아브라함의 인생을 보면 세계 만방의 아버지로 산 적이 없습니다. 영향을 끼쳤다고 해봐야 가나안 땅에 살면서 헷 족속이나 주변 민족들과 교류만  살았을 뿐 그는 열국의 아버지로 산 적이 없었습니다. 하지만 아브라함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를 통해서 온 세상 모든 민족이 구원을 받으므로 아브라함이 열국의 아버지이 된 것입니다. 

아브라함에게서 주신 열국의 아버지라는 이름이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짐을 족보를 통해서 보여주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다윗은 왜 대표자로 기록했을까요? 다윗은 하나님께서 가장 사랑하신 종이었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존경하고 따르는 왕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런 다윗에게도 치명적인 약점이 있습니다. 그 약점은 바로 죄입니다. 부하의 아내를 빼앗았고  그를 죽였습니다. 비열하고 치졸한 짓을 행했습니다. 도저히 왕권을 지킬 힘도 자격도 없지만 그 왕권이 영원히 세워지게 됩니다. 어떻게요? 다윗의 후손으로 메시야가 오심으로 그 무력한 왕권이 영원한 왕권으로 세워짐을 족보를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아브라함과 다윗으로 시작하는 족보를 볼 때마다 메시야가 어떤 분으로 오시는지 분명하게 알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족보를 보면 여성들의 이름이 많이 등장합니다. 3절 말씀을 보시면 다말이 등장하고 5절을 보시면 라합과 룻이 등장하며 6절을 보시면 우리야의 아내 즉 밧세바가 등장합니다. 사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고대 족보에 여성의 이름을 등장시키는 것은 쉽게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등장하는 네 명의 여인들의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 공통점은 다름 아닌 모두가 이방 여인이라는 것입니다. 

다말은 가나안이 그녀의 고향이었습니다. 라합은 우리가 잘 알다시피 여리고 성의 기생이었습니다. 룻은 고향이 모압이었고 우리야의 아내 밧세바는 헷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이방인들, 특별히 여인들의 이름을 하나님께서 이 족보에서 기록하게 하신 이유는 메시야가 유대인들의 왕으로만 오시는 것이 아니라 이방인들까지, 모든 사람들을 위해서 오시는 분임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방을 위하여 오셨기 때문에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우리에게도 복음이 전파되어졌습니다. 구약 시대는 철저한 선민 사상에 의거한 역사였다면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구원의 역사가 이방인들에게로 넓혀져 가고 퍼져가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런 하나님의 역사에 흐름을 읽는다면 그 어느 사람도 구별하거나 차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누구에게나 어떤 사람에게나 우리 민족과 역사적 앙숙의 관계를 가진 자들에게나 그들은 복음을 받을 자격이 있고 우리는 복음을 전해야 할 의무가 있다는 것입니다. 땅 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라! 하신 우리 주님의 말씀은 복음은 누구에게나 전해지는 것이다. 우리 주님께서 여인들의 이름, 특별히 이방인들의 이름을 기록하신 이유가 바로 그 이유이기 때문입니다. 여인들의 이름을 기록한 특별히 6절을 보시겠습니다. 함께 읽습니다. 


"이새는 다윗 왕을 낳으니라 다윗은 우리야의 아내에게서 솔로몬을 낳고" 


밧세바를 좀 특별하게 지칭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만약 이 족보를 기록했다면 다윗은 밧세바에게서 솔로몬을 낳았다 라고 기록할 것 같은데 왜 유독 우리야의 아내라고 죽은 우리야의 이름을 명명하는 것일까요? 밧세바의 이름은 감추고 우리야의 이름을 드러내는 것일까요? 마태가 이렇게 기록하고 있는 이유, 하나님께서 성령을 통해서 마태를 감동시킨 이유는 바로 다윗의 죄를 지적하시고 드러내기 위해서입니다. 

다윗은 이것을 완전범죄라고 여겼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서 죄는 결코 감출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은 나단 선지자를 보내서 그를 책망하게 하시고 그의 죄를 백일하에 드러내셨습니다. 

그리고 신약 시대 오늘 우리가 읽은 이 자리에서도 다윗이 지은 그 죄는 감출 수 없는 죄라는 것을 지적하고 있는 것입니다. 죄는 시간이 흘러도 역시 죄일 뿐입니다.  

우리 이 족보를 읽으면서 두려움을 느껴야 됩니다. 사람들은 죄 짓는 것을 쉽게 생각합니다. 죄 짓고 하나님께 회개하면 하나님이 용서하신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옳은 말씀이고 맞는 말씀입니다. 하지만 죄의 흔적은 오래도록 남습니다. 

그 죄의 결과는 치명적입니다. 

우리는 족보를 읽으면서 예수 그리스도가 아니면 우리는 구원 받을 수 없는 존재임을 분명히 알게 됩니다. 

그리고 동시에 죄를 지어서는 안되겠구나. 정결하고 신실한 삶을 살아야겠구나

다짐하게 됩니다.


16절 말씀을 보시겠습니다.
"야곱은 마리아의 남편 요셉을 낳았으니 마리아에게서 그리스도라 칭하는 예수가 나시니라"


요셉 중심으로 기록된 것이 아니라 마리아 중심으로 기록되고 있습니다. 요셉을 마리아의 남편이라고 지칭하고 있고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라고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성경은 여성을 차별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연약한 자를 위한 책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셔서 하신 일은 여성을 사랑하시고 여성을 사회의 중심으로 끌어들였습니다.

 예수님은 연약하고 병들고 가난한 자의 친구가 되시고 그들의 위로자가 되어 주셨습니다. 요셉을 제치고 마리아가 예수를 낳았다고 기록한 이유는 세상은 병든 자, 가난한 자, 물질이 없는 자 이런 자들을 차별하지만 예수님은 그들을 차별하지 않는다는 걸 명확하게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예수님 닮은 제자라면 예수님의 이 정신을 분명히 기억하고 세상이 차별하는 자, 예수님 믿는 자는 결단코 차별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들을 예수님처럼 품어 안고 끌어안고 함께 보듬고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 하나님의 자녀가 되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맥락을 잡아주는 족보를 읽고 앞으로 신약 성경은 이런 방향으로 기록될 것입니다. 우리에게 보여주셨습니다. 이것은 비단 신약성경의 기록에만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께서 오셔서 오늘 예수님이 재림하실 그때까지 영원토록 이어지는 흐름입니다. 이 흐름을 분명히 붙잡고 우리의 삶 가운데 이 흐름에서 흐트러지지 않고 벗어나지 않는 거룩한 인생을 살아가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1)  죄로 죽을 수 밖에 없는 인생을 구원하러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놀라운 은혜를 세상 끝까지 증거하는 인생을 살게 하소서


2) 연약한 자를 위하여 오신 예수님처럼 우리도 고통받는 사람을 위하여 늘 기도하고 우리의 팔을 내밀어 돕게 하소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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