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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아모스 2장

친양: 주의 길로 달려가리라, 나의 믿음 약할  



아모스는 1장 1절에서 “드고아의 목자”라고 소개됩니다. 드고아는 유다에 속한 작은 시골동네였습니다. 특이한 것은 무엇보다 그가 유다사람이면서 지금 북 이스라엘에 대해서.. 말씀을 선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모스 7장 12절에서 거짓선지자 아마샤가 아모스에게 “너는 유다땅에나 가서 거기서나 예언을 하라”고 이야기 하지요.. 아모스는 선지자 집안의 출신도 아니었고, 그저 뽕나무를 배양하는 사람이요 목자였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그를  북이스라엘로 가서 말씀을 선포하라고 하셨고.. 그 메세지는 “너희의 죄가 너무 많아서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것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니 그의 마음의 부담은 얼마나 컸겠습니까? 그래서 그의 이름도 “무거운 짐을 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아모스가 아니었나 싶습니다. 


그 아모스가 말씀을 전했던 그 때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가 다스리던 시대였습니다. 그 시대는 한마디로 부유했던 시대였습니다. 풍요로움속에서 하나님을 잊은 사람들을 향하.. 아모스는 이렇게 말씀을 전합니다. 풍요해 보이나.. 아니다!!! 지금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지 못한 기갈이라” 8:11


아모스서를 크게 나누면 

1,2장: 여덞가지 대상을 향한 심판의 경고

3-6장: 세가지 설교

7-9장: 다섯가지 환상을 통한 이스라엘 민족에 대한 심판 경고


1장에서는 다메섹을 향한 경고, 가사 블레셋지역, 두로, 에돔,암몬에 대한 심판이 선포되고, 

2장에 이르면 모압의 죄에 대한 심판이 선포됩니다. 


선지자는 지금 이스라엘 왕국을 둘러싼 주변 국가들을 하나하나 지적하면서 그 주변 국가들의 범죄와 그 범죄한 백성들에 대한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의 메세지가 차례대로 전달하기 시작합니다. 이 선지자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이스라엘 백성은 어떤 생각을 했을가요? 그들은 모두 이스라엘에 근접하여 이스라엘을 이전 저런 모습으로 괴롭히던 눈에 가시와도 같은 나라들이었기에… 아마도 그들은 그 열방의 심판에 대한 예언을 들으면서.. “그래!! 맞아 이들을 심판을 받아 마땅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거기까지면 좋은데.. 문제는 그 다음입니다. 오늘 2장 4절에 이르면... 그 심판이 어떤 나라에 선포되는가 하면.. 남 유다입니다. 물론 지금 그들은 남유다와 배척하고 있는 상황속에 있습니다. 그러나.. 누가 머랬든 어째든, 그들은 뿌리가 같았지요, 그들이 싫긴 했지만, 그러나 그들은 다른 이방 나라들과는 달랐습니다. 같은 뿌리요, 하나님의 백성이었지요. 지금까지, 아모스가 심판을 선포한 그 이방나라들은 어째든 망해도 싼 나라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유다는 좀 달랐습니다. 하나님의 백성이요, 다른 이방 나라들 보다는 나았던 것이지요.. 그런데 그런 유다가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다? 음… 그들의 마음이 썩 편하지만은 않았을 것입니다. 


더 그들로 하여금 마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은 그들이 심판을 받게 되는 죄의 목록이었습니다. 유다는 다른 나라들 처럼 아이밴 여인의 배를 가르지도 않았고, 욕심을 끝없이 부린 적도 없고, 인신 매매를 한적도 없었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들이 심판을 받았는가… 4절을 보십시요. “이는 저희가 여호와의 율법을 무시하며 그 율례를 지키지 아니하고 그 열조의 따라가던 거짓것에 미혹되었음이라” 


하나님의 백성을 향한 심판의 기준은 이방인들의 그것과는 달랐습니다. 그들처럼 악행을 행하면서 비도덕적인 삶을 살지 않았는가.. 하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들의 삶에 하나님을 중심에 모시고 살았는가”하는 더욱 더 높은 기준을 들이대고 계신 것입니다. 


먼가..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을 것입니다. 불안해왔을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올게 오고 맙니다. 6절에 이르자, 아모스는 누구에 대해서 심판을 선포하는가? 바로 지금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그들, 북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을 선포합니다.


저는 이 말씀을 보며.. 그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계10:10

내가 천사의 손에서 작은 두루마리를 갖다 먹어 버리니 내 입에는 같이 다나 먹은 후에 내 배에서는 쓰게 되더라


천사가 가져다준 그 두루마리 즉 성경을 먹었는데.. 달았습니다. 그런데.. 그 말씀을 먹어.. 소화시키기 시작하는데.. 즉 그 말씀을 읽는 것 정도가 아니라, 그 말씀이 자신의 삶을 비추기 시작하는데.. 어떻게 됩니까? 쓴 것입니다. 미치겠는거지요… 


하나님의 말씀은 빛입니다. 그 빛이 내 마음의 깊이 숨겨진 그 어두움을 비추기 시작하는데.. 드러나는 것입니다. 나의 죄악과 추함이 그 빛아래 드러나기 시작한 것입니다. 괜찮은 사람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얼마나 추악한 죄인인지를 알게 된 것이지요.. 


그래서 빛이 세상에 왔으나, 사람들은 그 빛을 미워하고, 어둠을 사랑한 것입니다. 자신의 연약함과 죄악을 드러내고 싶지 않은 사람들.. 그러나 자신이 그 죄악을 알지 못한다고 해서, 그 죄가 없어지는 것이 아니지요.. 그 죄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가장 중요한 것은 그 죄를 직면하는 것입니다. 보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이신 예수님을 통해 우리의 죄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러나 그 것은 우리로 정죄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우리를 치료하기 위한 빛입니다. 우리로 깨닫게 하시고, 그 은혜를 붙들고 치유의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기 위해…

오늘 우리에겐 이 말씀의 빛이 필요한 것입니다. 오늘 그들에게 비춰진 이 말씀의 빛이 우리에게도 비추어져 참된 회복과 치유가 일어나길 바랍니다. 



그 빛이 무엇을 비추는가.. 6-8절은 정확하게 그들의 죄를 드러냅니다.

첫째, 은을 받고 의인을 팔며… 이스라엘의 경제법의 기본.. 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라는 것입니다. 모든 땅이 하나님의 소유이기 때문에.. 어느 누구도 영원히 땅을 팔고 살 수가 없었습니다. 아무리 보잘것 없는 사람도 자기 땅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나누어 주신 것이지요.

그러나 일시적으로 땅을 잃을 수 있다. 가난한 자가 빚은 지고.. 빚을 갚지 못하면 땅을 빼앗기고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러나 희년이라는 제도가 있어서.. 다시 해방이 된다. 땅을 회복하게 된다.. 노예로부터 해방되게 됩니다. 그런데.. 희년이 되어 돌아온 사람들이 다시 자기 땅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려고, 재판장을 매수하는것? 이 사람이 원래 땅주인이 맞는가를 판결내려야 하는데.. 그들이 은을 주고 거짓 증인을 세운 것입니다. 그 거짓 증인들은 은을 받고 그 사람이 진짜 땅의 소유자인줄 알면서도.. 잘 모르겠다고 말한 것입니다.  


두번째, 가난한 자의 머리에 있는 티끌을 탐내며..

가난한 자의 머리에 티끌이 왜 탐을 내었을까요? 티끝은 땅에 있어야 하는데, 머리에 있으니.. 가난한 자의 머리가 꼭 땅 같이 보인 것입니다.. 마치 오늘날 소상공인들이 먹고 사는 그러한 것까지 돈이 되어 보이니.. 그것을 대기업들이 치고 들어오는 것이지요.. 돈과 욕심이 사로잡혀 모든 것이 돈으로만 보이는 것입니다.


세뻔재, 7절, 겸손한 자의 길을 굽게 하고.. 겸손한 자란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보겠다고 결심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길을 굽게 한다는 것입니다.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데.. 사람들이 말합니다. 다 부질 없는 짓이라고.. 말씀대로 살고자 하는 사람들을 제일 낙담시키는 말은 사실 “야 너만 기독교인이냐.. 나도 기독교인이다. 심지어 나도 집사다, 그런데 다 이런거야.. 잘난척 하지마..”라고 하는 그 말과 시선.. 말씀대로 살려고 몸부림 치는 자들을 향한.. 격려와 응원이 아니라, 비웃음과 냉소가 있었던 것입니다.


네뻔째, 부자가 한 젊은 여인에게 다녀서 나의 이름을 더럽히며.. 젊은 여인은 이방제사를 주관하는 여 사제.. 그들의 제사법은 성행위… 아버지와 아들이 한 여인과 관계를 맺는다.. 세상에 이렇게 말도 안되는 일이 있나요? 그런데.. 그냥 그것을 눈감아 버립니다. 왜요? 먹고 사는게 현실이니깐.. “다 먹고 살아야 할 것 아닌가..” 라고 하면 그 모든 것이 그저 허용되어버리는. 불문율이 되어버린 것입니다… 세상이 다 그러니깐..


다섯째, 모든 단 옆에서 전당 잡은 옷 위에 누으며, 저희 신의 전에서 벌금으로 얻은 포도주를 마심이라

아예 그 우상의 제단 옆에 누어버림… 철야기도를 합니다. 종교적 열심이 그들에게 있습니당. 그런데 문제는… 그들이 어디에 누워있습니까? 가난한 사람에게 빼앗아 온 옷을 깔고.. 겉으로는 열심있는 신자처럼 보이나.. 그 삶은.. 억울한 자들의 옷 위에서 기도하고 종교적 열심을 보이는.. 그런 그들의 형식적이고 이중적인 신앙을 지금 하나님은 드러내고 계신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의 진짜 모습이었습니다. 비정하고, 욕심에 사로잡히고, 형식적인 종교생활.. 공의와 정의가 완전히 사라져 버린 것입니다. 


이 하나님의 백성이 이렇게 된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9-12절은 그 이유를 이야기 합니다. 


9-10절은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컸는지를 보여줍니다. 왜? 갑자기 그들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을 이야기 할까요? 그 사랑과 은혜에 오늘 그들의 모습을 비교하면서 지금 그들이 얼마나 기가막힌 자리에 앉아 있는지를 알게 해주기 위해서 였습니다. 그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들.. 그들이 이렇게 살아서는 안되는 사람들이었던 것입니다.


그들이 받은 가장 큰 은혜.. “내가 아모리 사람을 저희 앞에서 멸하여” 하나님은 그들을 자유하게 해 주셨습니다.  노예가 아닌 자유인으로.. 하나님의 백성이 되는 자유..  가나안 사람들, 그들은 마치 상수리 나무처럼 강하고 큰 백성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런 강한 자들로부터 구원하여 자유케 하셨다.. 40년동안 포기하지 않으면서 그들을 변화시켜 하나님의 백성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들로 그것을 지키며 누리며 살아가게 하시기 위해.. 하나님은 11절.. 바로 “나시르 사람”을 일으키셨습니다. 그들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의 말씀을 전해줄 선지자.. 하나님의 말씀을 주셨다는 것이빈다. 그 은혜를 기억하며 살라!!! 그리고 그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그들과 함께 하시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말씀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적용하며 살아갈때.. 하나님과 함께 살며, 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가도록 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들은 12절.. 나시르 사람으로 포도주를 마시게 하고, 예언하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니의 말씀을 듣지 않겠다고 한 것입니다. 왜요? 듣기 싫으니깐.. 자기의 죄를 드러내며, 자기를 힘들게 하니깐.. 그리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것보다 세상을 의지하는 것이 훨씬 더 지혜로워 보였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오늘 우리가 회복해야 하는 것,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마지막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심판하신다.. 어떻게 심판하시는가? 곡식단을 실은 수레가 흙을 누름같이 내가 너희 자리에 너희를 누르리니.. 

곡식단을 수레에 싣었는데.. 너무 많이 싣었습니다. 어떻게 되었습니까? 그 곡식단에 깔려죽게 된 것입니다. 욕심이 회가 되어버린 것.. 돈 때문에 죽게 된 것입니다. 우리의 우상이 우리의 주인이 되어서.. 우리로 죽게 한 것이지요…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14절 이하는 보여줍니다. 아무도 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단, 오직 벌거벗은 자만이.. 그 심판에서 빠져나올 수 있습니다. 벌거벗은 자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먹은자, 그 빛이신 하나니의 말씀이 자신을 비추도록 한 사람… 그래서 그 말씀앞에 정직히 연약함을 드러내놓고.. 오직 하나님의 은혜를 붇드는 자입니다. 바로 그 은혜를 붙드는 자만이 살 수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아모스의 경고는 우리를 향한 경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말씀앞에 다시 서길 바랍니다. 시편 139:23절에서 시편기자의 고백처럼..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오늘 우리의 우상을 버리고.. 말씀앞에 우리를 정직히 살펴주소서.. 고백하며, 그분의 은혜를 붙잡고 나아갈때..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회복시키실 것입니다.


이 시간 함께 기도하며 나아가길 원합니다.

  1. 하나님 오늘 말씀을 통해 우리의 삶을 비추실때, 주님앞에 정직히 서서 우리의 악함과 추함을 깨닫게 하시고,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며 불들며 살아가는 자가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2. 오늘 우리로 주님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는 , 말씀을 먹고 살아가는 삶을 회복시켜주시옵소서.
  3. 오늘 우리, 하나님의 교회가 형식적이고 이중적인 크리스천이 아닌, 말씀대로 살아가며, 공의와 정의를 행하며 살아가는 삶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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