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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하나님의 진리 등대 (찬송510장)

말씀 : 호세아 8장 1~14


오늘 우리가 읽은 호세아8장 말씀에 보면 그 첫 번째 기준이 잘못되어서 나라 전체가 우상숭배에 빠지게 된 한 불행한 나라 북이스라엘을 봅니다. 

그 북이스라엘의 첫 번째 기준이 무엇인가 오늘 본문은 사마리아의 송아지라고 설명합니다. 5절과 6절을 보겠습니다. 


"사마리아여 네 송아지는 버려졌느니라 내 진노가 무리를 향하여 타오르나니 그들이 어느 때에야 무죄하겠느냐 이것은 이스라엘에서 나고 장인이 만든 것이라 참 신이 아니니 사마리아의 송아지가 산산조각이 나리라"


사마리아의 송아지라는 독특한 표현이 나오는데 사실은 사마리아에 송아지 우상이 있었던 것이 아니고 벧엘과 단에 있었습니다. 그러면 왜 사마리아의 송아지라고 말하느냐? 사마리아가 북이스라엘의 수도였기 때문에 북이스라엘 전체를 대표적으로 나타내는 총칭적인 표현입니다. 즉 송아지 우상, 송아지를 숭배하는 사상이 북이스라엘 전체에 넓게 퍼져있었다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왜 벧엘과 단에는 금송아지 우상이 있었는가? 이건 북이스라엘을 처음 창건한 여로보암 1세 때부터 세워진 것이었습니다. 남유다와 북이스라엘이 갈라졌습니다. 북이스라엘은 여로보암이 열 지파를 거느리고 훨씬 더 많은 영토를 차지했습니다. 하지만 나라를 나누고 나서 보니 남유다에 예루살렘 성이 있는 걸 발견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에는 하나님의 성전이 있었습니다. 다 가졌는데 하나님의 성전이 없었습니다. 그때부터 고민이 되었습니다. 북이스라엘 백성들, 내 백성들이 유대인의 세 번의 명절을 경험하며 남 유다에 가서 성전에서 예배를 드리게 되면 그곳에서 마음이 빼앗겨서 돌아오지 않으면 어떻게 될 것인가? 혹시 돌아올 마음이 있다 하더라도 남유다의 르호보암 왕이 국경을 폐쇄하면 나는 어떻게 될 것인가? 그런 두려움에 사로잡힙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영토 제일 남쪽 벧엘에 성전이라고 하는 공간을 하나 만들고 제일 북쪽 단에도 하나의 공간을 만듭니다. 그리고 그곳에 금 송아지 우상을 두었습니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 금송아지가 너희를 이집트에서 구원해 낸 하나님이다. 그리고 이제는 여기서 예배드리면 된다! 남유다로 갈 필요가 없다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그때부터 시작된 금 송아지 숭배 사상이 지금 여로보암 2세 때까지 약 200년이 넘는 시기 동안 북이스라엘에서는 끊임없이 이어져 왔습니다. 

처음부터 기준을 잘못 잡은 것입니다. 

북이스라엘의 완악하고 잘못된 우상 숭배에 따른 바로 첫 번째 왕이었던 여로보암 1세 때부터 시작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사마리아의 송아지라고 말씀하시고 이것이 가증하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북이스라엘은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그곳을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거짓말하고 여호와의 성전이라고 자기들끼리 떠들고 있습니다.  어찌 이곳이 하나님의 성전이 될 수 있겠습니까? 1절을 보겠습니다.  


"나팔을 네 입에 댈지어다 원수가 독수리처럼 여호와의 집에 덮치리니 이는 그들이 내 언약을 어기며 내 율법을 범함이로다"


여호와의 집에 덮치겠다 말씀하십니다. 여호와의 집이 아닌데 자기들 스스로 여호와의 집이라 말하는 이곳에 하나님이 진노의 심판이 덮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지금 생각할 때 어떻게 금 송아지를 만들어 놓고 여기가 하나님의 성전이라고 말할 수 있느냐? 그들이 이해되지 않는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오늘 21세기 우리 이 시대에도 얼마든지 일어나고 있는 일입니다. 하나님의 성전에서 하나님 아닌 물질을 숭배하고 돈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고 하나님 보다 물질, 하나님 보다 사람, 하나님 보다 인간관계를 최우선 가치로 여기고 살아가면 그 또한 하나님 성전에 금 송아지를 두는 것입니다. 

그리고나서 이곳을 성전이다. 교회라고 말하는 이를 하나님은 가만히 두지 않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 성전이라고 말하는 그곳을 내가 파괴해야 너희들이 그곳에 가지 않을 것이 아니냐? 이것이 오히려 너희들에게는 유익이 될 것이다. 하나님 그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들으며 우리를 깨달아야 합니다. 우리 속에 혹시 하나님 아닌 금 송아지를 모셔두고 이걸 하나님의 성전이다! 이분이 하나님이다. 그리고 우리가 신앙생활하고 있는 건 아닌가? 200년 동안이나 첫 번째 기준이 잘못되었다면 그 다음 왕, 그 다음 왕이 고쳐야 옳았습니다. 고치고 최선을 다하고 그리고 철저하게 자신의 살을 깎아내는 듯한 고통을 감수하며 이 모든 잘못을 뒤집고 새롭게 바로 세워야만 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그런 철저한 노력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 때문에 하나님께서 북이스라엘을 심판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4절도 보겠습니다. 


"그들이 왕들을 세웠으나 내게서 난 것이 아니며 그들이 지도자들을 세웠으나 내가 모르는 바이며 그들이 또 그 은, 금으로 자기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었나니 결국은 파괴되고 말리라"


왕들이 여럿 일어났습니다. 북이스라엘에 자고나면 왕이 바뀌면 또 자고 나면 왕이 바뀌고 여러 왕조가 세워졌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그 왕들은 내게서 난 왕들이 아니라고 말씀합니다. 자기들끼리 왕이라고 떠들고 있으나 그러나 금 송아지를 숭배하는 왕이 어떻게 내게서 난 왕이냐! 너희들끼리 소꿉놀이 하는 것처럼 왕노릇 하고 장난치고 있으나 나는 너희를 세운 적이 없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서운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교회 공동체에서도 우리끼리 직분을 주고 받으나 직분자가 직분자 답게 행동하지 않으면 너희들은 내게서 난 직분자가 아니라고 말씀하십니다. 

목사든 장로든 교회중직이든 누구든 우리 마음 속에 금 송아지를 세워두고 살아간다면 하나님은 너희를 내게서 난 직분자가 아니라고 단호히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열심히 신앙생활을 한다고 했는데 금 송아지 우상을 제거하지 못하고 살다가 심판 날 하나님 앞에 서서 하나님께서 넌 누구냐? 라고 물으신다면 얼마나 당황스럽겠습니까? 이런 일은 우리 인생에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 앞에 가는 그 날에 결코 일어나서는 안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너는 누구냐가 아니라 잘 왔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위로하시고 손 잡아 주셔야 우리 믿음의 생활이 지금 살아가는 이 삶이 복될 줄로 믿습니다. 철저하게 매일 같이 내 속에 있는 하나님 아닌 다른 우상들을 제거하고 살아가야 할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우리는 왕이라고 생각하며 살았는데 너는 내게서 난 왕이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이 하나님의 무서운 진노의 불을 상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계속해서 이어서 말씀하십니다. 8절을 보겠습니다.  


 "이스라엘은 이미 삼켜졌은즉 이제 여러 나라 가운데에 있는 것이 즐겨 쓰지 아니하는 그릇 같도다"


하나님은 또한 이런 사람들을 즐겨 쓰지 않는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집에 그릇이 수십 개가 있어도 손님이 오면 내어 놓는 그릇은 한정되어 있습니다. 주인의 손에 잘 잡히고 주인이 사랑하고 아끼는 그릇이 그것입니다. 훌륭한 사람들이 오면 내가 사랑하는 손님이 오면 항상 최고의 그릇에다가 차를 대접하고 식사를 대접합니다. 주인이 사랑하고 아끼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이런 백성들을 내가 즐겨쓰지 않는 그릇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무리 화려해 보이고 아무리 좋아 보인다 하더라도 하나님 손에 사로잡히지 않는 그릇 너는 쓸모없다고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비참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는 잘 준비 되었다고 생각했는데 하나님은 너를 필요 없다고 말씀하시면 이 보다 더 비참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오늘 우리가 하나님 손에 자주 잡히는 하나님 즐겨쓰는 그릇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즐겨쓰는 그릇이 되려면 우리의 영혼이 정결하고 깨끗해야 됩니다.

 사람은 모르더라도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우리의 속 사람과 생각하는 것과 우리가 얼마나 하나님 앞에 잘못된 삶을 살고 있는지 하나님은 다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즐겨 사용하시는 깨끗한 그릇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너 속 마음을 보여라 하고 하면 우리 마음을 다 보여드릴 수 있는 정결하고 정직한 백성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즐겨쓰지 않는 그릇이 되면 그들의 결말이 어떻게 되는지 말씀합니다. 9절을 보겠습니다.  


"그들이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앗수르로 갔고 에브라임이 값 주고 사랑하는 자들을 얻었도다"


홀로 떨어진 들나귀처럼 혼자 날뛰는 들나귀처럼 이리저리 뛰어다닌다고 말씀합니다. 공동체를 찾지 못해서 하나님과 함께 살아가는 교회 공동체에서 떠나서 홀로 이리 뛰고 저리 뛰는 들나귀처럼 될 것이라고 말씀합니다. 그 들나귀가 받아 주는 공간이 없자 많은 돈을 들여서 앗수르에 가서 조공을 바치고 보호를 요청합니다. 북이스라엘의 비참한 현재를 말하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가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 손에 사로잡힌 좋은 그릇 쓸모 있는 그릇이 되지 못하면 우린 이렇게 비참한 인생을 맞이하게 될 것입니다. 호세아를 통해서 말씀하시는 이 은유가 우리의 현실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옛날 기원전 8세기에 호세아에게 말씀하셨던 이것을 오늘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도 깨우치라고 말씀하십니다. 부디 돌이키고 깨우치시고 하나님의 손에 잘 쓰임받는 좋은 그릇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1) 허울 뿐인 직분자가 아니라 주의 일에 충성스런 일꾼이 되게 하소서.


2) 잘못된 신앙전통을 따르지 않고 성경이 말하는 그리스도의 제자 세우는 일에 전념하는 교회 전통을 세우게 하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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