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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예레미야 36장

찬양: 다시 복음 앞에, 예수 사랑하심은


오늘 말씀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유다왕 요시아의 아들 여호야김 사년(605년)에..

참고로 예레미야는 시간적 순서대로 쓰여진 책이 아니라는 사실을 기억하면서 우리가 헷갈리지 말아야 하는데요. 오늘 말씀은 우리에게 분명하게 이 말씀이 언제 선포되었는지를 알려줌으로서, 우리는 그를 통해 이 말씀이 어떤 상황속에서 선포되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세계의 역사속에서, 특별히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605년은 굉장히 중요한 해임을 우리는 알 수 있는데, 왜냐하면 이때 바로 갈그미스 전투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갈그미스 전투는 수리아 북부 갈그미스에서 바벨론왕 나보폴라살의 맏아들 느부갓네살이 애굽의 바로느고르 비롯한 앗수르 동맹을 격퇴한 전쟁입니다. 이 전쟁으로 앗수르는 영원히 역사속에서 사라졌고, 애굽은 쇠퇴하여서 오늘날까지 약한 나라로 전락하였습니다. 그리고 이 전쟁에서 승리한 바벨론은 세계를 제패하는 패권국가가 되었습니다. 그렇다면 이스라엘 어떻게 되었을까요? 애굽의 편에 섰던 유다는 엄청난 어려움을 겪게 된 것입니다. 바벨론이 신흥국가로 떠오르며, 예레미야와 같은 선지자가 바벨론에게 항복하라 했을때에도 그들은 “설마”했었습니다. 이스라엘에게 애굽은 지지않을 것 같은 태양과 같았기 때문입니다. 결국 그 인간적인 시각이 그들로 하나님이 아닌, 애굽을, 즉 헛된 것을 의지하고, 따르게 했고, 그 결과 그들은 결국 후에 바벨론에 멸망을 당하는 지경에 이르게 됩니다.


바벨론이 고대 근동의 모든 국가를 점령해가면서, 바벨론의 반대편에 섬으로 인해서, 절제 절명의 위기와 절망, 곤경에 처한 이스라엘.. 그런데 3절에 보며.. 그들이 마주하고 있는 그 절망의 때를 하나님은 머라고 하시는가 하면. “유다족속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한 모든 재앙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킬 듯하니…” 그리고 7절..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날 듯 하니라” 


“이젠 이스라엘은 정말 망했다!”라고 할 수 있는 그 위기를 보며, 하나님은 “그들이 나에게 돌이킬 기회”라고 이야기 하십니다. 인간의 눈에 그저 절망이, 하나님에게 있어선 그들이 하나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였던 것입니다. 인간의 절망과 하나님의 기회.. 바로 그때 오늘 말씀의 핵심입니다. 


그렇다면, 이 절망의 시간은 내가 주는 기회란다”라고 하심을 듣고는, 예레미야가 무엇을 하였습니까?? 그는 그의 제자였던 바룩을 부릅니다. 그리고 그 바룩을 통해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하나님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게 하고는, 사람들에게 금식을 선포합니다. 그리고  이 모든 말씀, 즉 두루마리에 쓴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에게 들려지도록 낭독하게 한 것입니다. 왜 이렇게 했을까요?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이 기회속에, 그들을 다시 하나님께 돌이키게 할 수 있는 것, 회복시킬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뿐임을, 하나님의 말씀만이 소망임을.. 예레미야는 알았던 것입니다. 어떻게 그는 이것을 알았을까요? 하나님께서 “이 절망은 너희에게 기회다”라고 했을때, 그는 “말씀”을 모든 사람이 듣게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을까요?


예레미야 15장 15- 16절

[렘15:15-16]

15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오니 원하건대 주는 나를 기억하시며 돌보시사 나를 박해하는 자에게 보복하시고 주의 오래 참으심으로 말미암아 나로 멸망하지 아니하게 하옵시며 주를 위하여 내가 부끄러움 당하는 줄을 아시옵소서

16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여 나는 주의 이름으로 일컬음을 받는 자라 내가 주의 말씀을 얻어 먹었사오니 주의 말씀은 내게 기쁨과 내 마음의 즐거움이오나


그는 온갖 어려움을 당했습니다. 수치를 당하고 박해를 당하고, 부끄러움을 당했습니다. 그러나 그떄에도 그로 하여금 여전히 기쁨과 즐거움과 소망을 갖게 한것이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러한 그의 경험이, 애굽을 의지하였으나, 헛된 것을 의지함으로 절망에 빠지게 된 이스라엘 백성의 문제의 근본이자, 해결책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이 위기가 그 말씀을 붙들 기회라는 사실을 알게했던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여러분 가운데 어려움과 절망의 시간을 보내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일터에서 일과, 관계속에서, 가정에서 자녀와 혹은 남편과 아내, 부모와의 관계의 어려움을 겪고 있습니까? 몸과 마음의 질병으로 고통당하고 있는 분이 계십니까? 

우리의 눈에는, 그저 절망에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라고 말할 수 밖에 없지만, 그러나 그 절망의 시간은 우리로 하나님의 말씀앞으로 나아오라, 그 말씀을 먹으라!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의 시간일지 모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는 그때 주님을 찾아야 합니다. 간절히 그분의 이름을 부르짖어야 합니다. 무엇보다 그분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먹는 것은 듣는것과는 다릅니다. 어떻게 다를까요? 우리는 16절 이후에 이스라엘 방백들과 여호야김의 반응을 보며 알 수 있습니다. 


16절을 보시면.. 11절부터 이 말씀을 들은 미가야가 모든 사람들앞에 이 바룩으로부터 들은 이 말씀을 읽혀 들리게 합니다. 그러자 어떤일이 있는가 하면 16절..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랍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놀랐고, 그리고 19절을 보면 바룩과 예레미야를 숨겨주는데, 이것은 그들이 들은 말씀에 호의적이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그리고 20절에 보면 이 말씀은 여호야김 왕에게 까지 들려집니다. 그렇다면 왕은 이 말을 듣고는 그는 어떻게 반응했을까요? 23절.. 온 두루마리를 태웠습니다. 그 말씀은 29절에 보면 이스라엘의 죄를 고발하고, 그 죄로 인해 바벨론에 의해 멸망하게 될 것이라는 말씀이었을 것입니다. 그 하나님의 말씀은 그의 죄와 이스라엘의 죄를 드러내고, 심판을 말씀하시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그의 마음을 불편하게 한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말씀을 태우기로 합니다. 아마 그는 이 말씀을 없애면 될것이라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바룩과 예레미야를 잡아라!! 이 말씀을 적은 예레미야와 바룩을 잡아 죽이면 될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숨기셨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은 다시 예레미야에게 임합니다. 그리고 그 여호야김에 대해서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하니하였으므로 모든 재난을 내리리라”


분명 여호야김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귀로는 들었으나, 마음으로는 듣지 않았습니다. 그가 없애려고 했던 말씀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고, 지금까지도 전해져 우리의 손에 들려져 있습니다. 풀은 마르고, 꽃은 시드나.. 하나님의 말씀은 영원히 있도다” 


오늘 여호야김이 불태웠으나 사라지지 않은 하나님의 말씀처럼.. 하나님의 말씀이 사라진것처럼 보였던 중세시대.. 그때 존 위클리프의 후예들인 롤라드파가 있었습니다. 롤라드라는 것은 중얼거린다!라는 것입니다. 중얼거리는 사람들.. 중세의 교회가 사람들이 성경을 읽기 시작하자, 교회는 사제만이 읽어야 할 성경을 교인들이 읽음을 불경스럽게 생각했고, 영어로 번역된 그 성경을 모두 불태워버립니다. 그 성경을 읽는 사람들을 잡아다 가두고 죽입니다. 그러자 어떻게 합니까? 바로 그 롤라드 파의 사람들은 성경을 외워버리기로 합니다. 그들 스스로가 성경이 된 것입니다. 그렇게 수많은 핍박속에서도 목숨을 걸고, 성경이 된 사람들을 통해 전해져온 것이 바로 우리 손에 들린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일은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그렇다면 우리가 해야할 일은 무엇일까요? 그 말씀을 다시 들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성경을 먹는다는 것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의 말씀이 들리자, 방백들은 놀랐습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그저 말씀앞에 놀라는 것이 아닙니다. 단지 말씀을 깨닫고, 호의적인 태도를 갖는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먹어야 합니다. 그 말씀을 먹는 다는 것은 그 앞에 나아가는 것입니다. 나아간다는 것은 그 말씀 편에 서겠다는 것이고, 그 말씀과 운명을 같이 하겠다는 결단입니다. 


사랑하는 우리 성도여러분, 오늘 우리안에 주시는 이 영적인 기회를 우리는 놓쳐서는 안될 것입니다. 비록 우리가 겪는 어려움이 우리의 죄 때문에 겪는 고통이요 절망이라 할지라도,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이 시간을 주님께 돌아올 수 있는 기회로서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다시 말씀앞에 나아가 그 말씀을 붙들고 살아갈 기회, 사랑하는 성도여러분, 이 기회를 붙들고, 오늘 그 말씀을 우리의 마음에 가득가득 채워가는 우리가 되길 바랍니다. 그 영원하신 말씀을 붙잡고 살아가는 오늘 하루가 되길.. 진심으로 소망합니다. 


  1. 오늘 우리가 겪는 아픔과 어려움이 결코 의미가 없고, 하나님의 손이 짧아 있는 일이 아님을 기억하고, 시간을 통해 하나님을 더욱 깊이 찾고, 만나는 시간이 되게 하여주시옵소서.
  2. 말씀이 우리의 생명임을 기억하며, 오늘 주님의 말씀을 더욱 가까이 하게 하여주시옵소서.
  3. 오늘 말씀앞에 정직히 반응하게 하시고, 우리의 가슴뿐만 아니라, 손과 발로 순종하는 삶을 살게 하여주시옵소서.
  4. 오늘 우리를 긍휼히 여겨주시고, 오늘 우리 교회가 회개하며 주님앞에 나아가오니, 우리를 회복시켜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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