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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 : 나는 예수 따라가는 (찬송349장)

말씀 : 시편123편 1~4


오늘 우리가 읽은 이 본문, 시편123편의 시인은 하나님 앞에 사랑스런 눈빛, 간절한 눈빛을 보냅니다. 하지만 하나님 앞에 이 시인이 간절하고, 사랑의 눈빛을 보내기 이전에 세상에 믿었던 사람들, 많은 사람들에게 경멸과 조소의 눈빛을 받아야만 했습니다.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 같은 표제어를 가진 이 시들은 저마다 다 사연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성전에 올라갈 때 정말 가기 힘든 성전에 가야 할 때 그들은 저마다 힘든 인생의 무게를 가지고, 사연을 가지고 올라갔습니다. ?

 

요즘처럼 성전이 지척에 있었던 시절이 아니었을 때 먼 곳에서 작정하고 몇 날 몇 일을 걸어서 성전에 올라가야만 했을 때 저마다 힘든 마음의 사연들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이 시인 역시 그런 사연을 가진 사람중에 한 사람입니다. 1절 말씀을 보겠습니다. "하늘에 계시는 주여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내가 눈을 들어 주께 향하나이다' 눈을 든다는 표현은 어느 한 곳에 머물러 있었던 눈을 들어서 하나님을 향한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향하기 전에 그의 눈빛은 모든 사람들이 다 그런 것처럼 세상을 향해있었습니다. 사람을 향해 있었습니다.

우리의 생업의 현장과 사람들이 살아가는 삶의 현장에 매몰되어 있었습니다.

그러다보니 보지 못할 것을 보고, 듣지 못할 것을 듣고 그 가운데에 많은 사람들과 다투고 수많은 어려움들을 겪고 들어야만 했습니다.

그 사연들을 그는 이렇게 단순하게 그러나 강하게 표현합니다. 3절과 4절을 보겠습니다.

"여호와여 우리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또 은혜를 베푸소서 심한 멸시가 우리에게 넘치나이다 안일한 자의 조소와 교만한 자의 멸시가 우리 영혼에 넘치나이다"

멸시와 조소, 이것이 그가 눈을 하나님께 들기 전에 세상에서 겪었던 어려운 일입니다. 한 사람에게 멸시와 조소를 겪었는지 아니면 공동체 모든 사람들에게 이런 어려운 일을 겪었는지 알 수 없지만 그는 많은 멸시 때문에 고통스러워 했습니다.

하지만 이 시인은 사람들의 멸시하는 눈빛과 사람들이 자신을 수군거리는 조소 때문에 영혼이 심히 피폐해졌습니다. 물론 우리가 인생길을 걸어가다 보면 내가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그 실수때문에 사람들의 조롱 받기도 합니다.

하지만 세상 사람들의 이 악한 멸시와 조소는 한번으로 그치지 않습니다.

내가 사과해도 내가 잘못되었다고 말해도 영원히 그 멸시와 조소는 나를 따라다닙니다. 많은 사람들이 조소와 멸시를 그치지 않고 멈추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멸시와 조소 때문에 죽을 것만 같습니다.

 

이런 멸시와 조소를 겪으면 보통의 사람들은 두 가지 행동을 합니다.

하나는 따라다니면서 부탁하고 애걸하고 복걸하고 내가 다시는 그런 일을 하지 않을테니 나와 함께 다시 이전처럼 지내자고 사람을 쫓아다니면서 애원하고 하소연합니다.

 

또 다른 유형의 사람들은 나도 똑같은 멸시와 조소를 보내며 그 자신도 악한 사람이 됩니다. 그렇게 사람들은 두 가지 양 극단에 서 있습니다. 나를 멸시하고 조소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우리가 할 수 있는 행동의 폭은 그렇게 크거나 넓지 않습니다.

 

두가지 선택의 상황 모두 사람의 영혼을 피폐하게 만듭니다. 우울증에 빠지게 하고 대인 기피증에 빠지게도 합니다. 그러나 이 시인은 많은 사람들의 멸시와 조소를 묵묵히 견디다가 하나님을 향하여 눈을 들고 하나님의 성전으로 발걸음을 옮기는 것으로 새로운 해결책을 찾습니다. 오히려 사람들에게 받았던 시선으로 인한 상처와 고통을 하나님을 향한 간절한 갈망의 눈빛으로 새롭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상전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같이,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같이 우리의 눈이 여호와 우리 하나님을 바라보며 우리에게 은혜 베풀어 주시기를 기다리나이다"

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종들의 눈, 여주인의 손을 바라보는 여종의 눈, 이 눈의 공통점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순종의 눈입니다. 종들은 멀리 떨어졌어도 주인의 손만 바라봅니다. 주인이 큰 소리로 종을 부를 때도 있지만 손짓으로 종에게 명령하는 때도 있기 때문입니다.

멀리 떨어져 있지만 항상 시선은 주인의 손을 향해야 합니다. 주인이 이 손으로 무엇을 지시하는지 어떤 것을 원하시는지 항상 멀리 떨어져서 주인의 손을 기다리고 주인의 손이 향하는 곳으로 내 발걸음이 가겠다는 준비와 순종의 눈빛입니다.

 

두 번째는 사랑을 갈망하는 눈입니다. 주인이 나를 어떻게 바라보든지, 주인이 무엇을 시키든지 주인을 사랑하는 눈으로 바라봅니다.

순종과 갈망, 그 표현을 눈으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가 많은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소의 눈길을 받았지만 주인을 향한 순종과 기다림, 그 주인을 향한 사랑의 눈빛을 보냄으로 자신의 영혼을 치유해 나가고 있습니다.

 

성경 전체를 볼 때 이런 아름다운 눈빛을 보낸 사람들이 여럿 있습니다. 그 중에서 누가복음 19장에 나오는 삭개오의 눈을 우리 예수님은 외면할 수 없었습니다. 여리고 성의 세리장이었던 삭개오는 그가 인생에서 너무 너무 힘든 일들을 많이 겪었습니다. 돈도 많고 명예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를 정말 개 같이 바라보는 여리고 성의 많은 사람들의 멸시와 조소의 눈길을 견딜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마침 여리고 성으로 들어오는 우리 주님의 소문을 듣고 뽕나무에 올라가서 주님을 한번 바라보아야 되겠다고 결단했습니다.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자신의 체통과 체면과 위신 따위는 다 생각지 않고 나무 위에 올라갔습니다.

삭개오는 여기 시편에 나오는 종의 눈처럼 예수님을 바라보았습니다. 주께서 손짓하시면 제가 달려가겠습니다. 주님께서 바라보시면 저도 주님을 사랑의 눈으로 바라보겠습니다.

우리 예수님이 삭개오가 올라갔던 뽕나무 아래에 서서 삭개오를 바라보았습니다.

주님이 삭개오를 바라보고 삭개오가 주님을 바라보는 그 눈이 마주치는 순간 우리 예수님은 차마 그냥 그곳을 지나갈 수가 없었습니다. 삭개오의 눈은 여기 시편에 기록된 종들의 눈처럼 간절함과 기다림과 사랑의 눈빛이었기 때문입니다.

 

 

세상 사람들의 멸시와 조소에 지친 눈이었기 때문에 주님은 차마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우리 주님이 십자가를 향해 가는 길이었는데도 그 걸음을 멈추시고 삭개오야 내려오라 하시고 오늘 내가 너의 집에 유하여야하겠다 하시고 그 집에 유하면서 삭개오의 상처받은 멸시와 조소의 그 마음들을 치료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성전에 올라오면서 어떤 눈으로 주님을 바라보는가는 굉장히 중요합니다. 삭개오처럼 오늘 이 시편의 저자처럼 주님을 향한 종들의 눈으로 주를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세상 사람들에게 멸시와 조소의 눈빛은 내가 더 무서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본다고 해서 치유되지 않습니다. 그들이 겁먹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시선을 돌려 주를 바라보시기를 바랍니다. 제가 주님을 갈망합니다.

주의 사랑에 굴복하겠습니다! 하는 종들의 눈빛을 갖고 주를 바라보시면 우리에게 주시는 한량없는 은혜가 오늘도 크게 임할 줄로 믿습니다.

그 귀한 은혜를 오늘 받아누리시는 주의 백성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

 

1) 우리는 살아가면서 관계의 어려움 때문에 때로는 많은 멸시를 당하여 상처받습니다. 그 때 오늘 시편에 기록된 것처럼 종이 주임을 바라보듯 우리가 하나님을 바라보면 순종하는 삶을 살기로 작정하면 우리 영혼이 치유받는 은혜를 누리게 됩니다.

 

2) 멸시를 받았다면 상대방을 똑같은 방법으로 제압하려 하지 말고 도리어 하나님을 바라보십시오. 하나님을 바라볼 때 진정한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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