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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 시편 84편

찬양: 내가 주의 장막을, 오직 예수 뿐이네



시편 84편은 하나님의 성소인 예루살렘을 갈 수 없는 상황속에서 하나님의 성전을 사모하는 간절한 마음이 찬양의 형태로 잘 나타나있는 찬양시입니다. 그래서 대체적으로 이 시는 바벨론 포로로 끌려온 고라자손(레위지파에 속한 성전문을 지키는 자들)들이 쓴 시라 여겨지기도 하고, 또는 다윗이 압살롬에 쫓겨서 그가 너무나 사랑했던 성소로 나아갈 수 없는 상황에서 쓰여진 시라고 보기도 합니다. 무엇이 되었든, 분명한 것은 지금 저자의 상황은 결코 좋지 않은 상황이라는 것, 더 명확히 말하자면, 하나님의 성소가 있는 그 예루살렘에 갈 수 없는 상황에 있는 것만은 분명합니다. 


이 시는 세부분으로 크게 나눌 수 있는데, 1-4절은 주의 장막을 간절히 사모하는 시인의 심령의 고백이, 중반부인 5-7절에서는 주의 장막을 사모하는 자들을 향하신 주의 은혜에 대한 확신이, 그리고 마지막 8-12절에서는 주의 장막을 사모하는 기름부음 받은 자의 간구와 신앙 고백입니다. 


1절에 보면 어찌 그리 사랑스러운지요... 사랑스러운지요에 해당하는 단어는 “물이 팔팔 끓여지는 모습”을 묘사하는 단어입니다. 2절에서는 그 여호와의 궁정을 사모하여(창백하게 되다), 쇠약함이여(소멸하다), 부르짖나이다(탄식하다). 만군의 하나님이 계시는 장막을 향한 자신의 강렬한 애착과 사랑.. 열정을 보여줍니다. 


여러분은 주님을 너무나 얼굴이 창백해질 정도로 그리워해보고, 사모해 본적이 있나요? 


그가 이렇게 장막을 사랑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시인이 장막을 그렇게도 사랑했던 이유는, 그것이 바로 4절 “주의 집” 바로 하나님께서 그곳에 거하시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래서 영어는 장막을 dwelling place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이 거하시는 곳, 그가 장막 그 자체는 사실 하나님의 크고 아름다우심에 비해 너무나 초라하고 보잘 것 없었지만, 그가 장막을 사랑한 이유였습니다. 그러니깐, 사실 성소는 사실, 장소적 개념보다, 바로 하나님의 임재를 말합니다. 성전이 무너져 내린 지금, 광야에 좇겨나 있는 지금 그는 그 성전, 하나님의 임재를 간절히 사모하고 구하고 있습니다.


포로 잡혀가 있는 상황이든, 아님 아들에게 쫓겨 광야에서 목숨을 부지하던 다윗의 모습이든... 그 절망적이고 비참한 상황에서, 그가 무엇보다 원하고 필요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임재, 함께 하심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의 삶에서, 어떠한 상황이든,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무엇인가요? 하나님의 임재, 함께하심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인생의 가장 비참함은 그 비참함을 깨닫지 못함에 있습니다. 인생의 비참함. 바로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되어버린 인생가운데, 우리의 영혼은 그 어떤것으로도 만족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생명의 주 되시는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혼을 만족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는 이 인생의 비참함을 깨닫습니다. 그의 영혼이 마음 둘 곳 없었음을 그는 3절에 참새와 제비를 보며 느낍니다. “참새와 제비가 부럽습니다. 그들도 머물곳이 있습니다. 그러나 나에겐 집이 없습니다. 나의 마음 둘 곳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우리는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세상을 보며 무엇을 부러워하고, 하나님께 무엇을 구하고 있나요? 비참함을 깨닫지 못하는 인생의 비참함... 그렇기에 인생의 비참함을 깨닫는 것은 은혜이고, 축복인 것입니다. 인생의 비참함을 깨닫을 때 비로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그것, 주님의 임재, 동행하심을 구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시인은 그 비참함을 깨닫는 것이 가장 큰 축복임을 확신하면 이렇게 노래합니다. 

5절. “주께 힘을 얻고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자들은 복이있나이다!!”


주의 집에 사는 자들은 복이 있다(4절)에 시인은 이야기 합니다. 그런데 지금 시인은 더 이상 그곳에 갈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임재를 사모하는 그의 갈망함 속에, 하나님은 그 주의 집에 사는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하십니다. 


“주께 힘을 얻은 자들” 이 말을 더 정확하게 번역하면 “주님 안에 그 힘이 있는 자들” 

즉 시인이 갈망하고 소망하는 “복 있는자”의 모습은 바로 “하나님과 연합한 자들”의 모습입니다.


오늘 우리가 그리스도인이라 말한다면, 우리는 어떠한 사람들입니까? “그리스도안에” 있는 자들, 즉 “하나님과 연합한 자들”입니다. 그분이 내 안에 계시고, 내가 그분안에 있는 것입니다. 요한복음은 예수님이 내안에, 내가 예수님안에 거하는 그 사랑의 연합을 이렇게 실제적으로 말합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 말이 너희안에”. 즉 말씀이 내 안에 거하시는 것입니다. 


구약의 시대, 다윗이, 고라자손이 그렇게도 사모했던... 하나님의 임재, 그의 집에 거하는 것, 오늘 우리는 우리에게 주신 이 말씀을 사모하고 읽을때에, 그 하나님의 임재를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비참함속에서 우리의 소망은 하나님의 임재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살아 우리 속에 계실 때, 우리는 그 임재의 축복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사모하십시오. 더 묵상하십시오. 읽고 또 읽으십시오. 이 말씀은 우리의 생명입니다. 


5절은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자” 주의 성소에 거하는자를 이야기 하며, 5절에서는 주의 성소에 나아가는 자를 말하는 것은 주의 성소에 거하는 자는 반드시 주의 성소로 나아가는 순례자의 삶이라는 여정을, 걸어야한다는 것, 살아야 하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 인 것 같습니다. fixing your eyes on Jesus 히브리서 12장 1-2절, 순례란 주님께 우리의 시선을 고정한채 나아가는 믿음의 여정을 하는 것입니다. 순례자의 길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눈물골짜기”지나가야 합니다. 우리를 흔들고, 넘어뜨리며 주저하게 할것입니다. 그래서 7절에 보면 “저희는 힘을 얻고 더 얻어 나아가 각기 하나님 앞에 나타나리이다”라고 합니다. 하나님 앞에 나타난다는 말이 “수동태”로 쓰여있습니다. 이것은 바로 그들이 스스로의 의지나 능력에 의해서가 아니라 하나님의 전적인 은혜와 도우심에 의해 그들이 이 순례의 길을 끝까지 마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순례의 길을 마칠 “힘”을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눈을 들어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그 주를 바라보는 자에게 주신 하나님의 약속 이사야 선지자는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 하여도 곤비치 아니하겠고 걸아가도 피곤치 아니하리로다”(이사야40:31)


하나님안에서 하나님과 함께, 주님을 바라보며 살아가는 이 순례자의 길을 걷는 것이 얼마나 큰 축복이고, 빼앗길 수 없는 은혜인지를 깨닫지 못한다면 할 수 없는 고백이 바로 10절입니다. 


주의 궁정에서의 한 이 다른 곳에서의 천 보다 나은즉 악인의 장막에 사는 것보다 내 하나님의 성전 문지기로 있는 것이 좋사오니


시인의 처지는 포로였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원했던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자신의 안녕이나, 예전에 누리던 영화롭고 형통한, 번영한 삶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이런 상황속에 있다면 여러분 무엇을 구하시겠습니까? 무엇을 구하고 계십니까?

지금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길 원하느냐? 라고 한다면 여러분은 무엇을 말하겠습니까?


그가 너무나 염원했던 것은 바로 하나님의 성소에서 섬기는 삶이었습니다. 주의 궁정에서 한날이.. 다른 곳에서의 천날보다 낫다고 고백합니다. 여기서 천날... 고통스럽거나 힘들게 보내는 천말이 아닙니다. 평화와 번영, 즐거움과 행복이 있는 나날들을 지칭합니다. 그리고 “천”이라는 수효도 문자적인 의미의 수효가 아니라 일면 일생의 모든 날들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영화와 안위를 누리는 세상적인 삶 전체와 하나님과의 친밀함을 누리며 그를 섬기는 한날을 비교하며 자신은 후자를 선택하겠다고 단호하게 선언하는 것입니다. 


또한 악인의 장막과 내 하나님의 성전을 대조합니다. 장막은 일시적인 것이고, 집은 바로 반영구적인 성격을 가진 건물입니다. 즉 악인의 형통이 결코 오래갈 수 없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악인의 장막에 편하게 거하는 것보다, 하나님의 집에 문지기로 사는 것이 더 좋다고 이야기 합니다. 좋다는 것은 원문으로 “기뻐하며 선택하다”라는 말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완료형으로 되어 있습니다. 즉 자신의 선택에 결코 변함이 없을것임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시편기자는 마지막으로...

“만군의 여호와여 주께 의지하는 자는 복이 있나이다”라고 이야기 합니다. 하나님께 의지하는 자가 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는 “정직하게 행하는 자”입니다. 정직한자는 죄가 없는 자를 말하지 않습니다. 죄가 없는 자는 없습니다. 정직함이란 하나님의 임재안에서, 그분의 의식하며 바로 하나님의 말씀을 삶의 규레로 삼고 그 말씀을 따라살려고 힘쓰며 애쓰는 삶을 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는자 만이 “정직할 수 있습니다” 악인은 시편 1편의 말씀처럼 자기의 꾀로 살려합니다. 그러나 주님의 임재안에서, 주를 의지하며 살아가려는 사람은. 손해를 무릎쓰고, 오해를 받더라도, 세상에 타협하지 않고...살아가고자 합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임재, 함께하심을 믿기 때문에.. 


시편기자는 세 번의 “복이”있다는 말로 복있는자가 누구인지를 보여줍니다.


“주의 집에 거하는자”, “그 마음에 시온의 대로가 있는자”, 그리고 “주께 의지하는 자” 

주님의 임재속에, 그분과 동행하는 자, 주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누는 자가 복이 있습을 그는 확신하며, 더욱 소망합니다. 사랑하는 나눔과 섬김의 교회 성도여러분, 하나님을 가까이 하십시오. 더욱 더 그분의 말씀을 읽고 묵상하십시오. 그것이 우리에게 가장 큰 축복입니다.


이 시간 우리가 함게 기도하길 원합니다. 

  1. 주님을 더욱 사모합니다.  우리에게 어떤 만족도 줄 수 없는 것을 찾아다녔던 우리의 비참함을 고백하오니, 이제는 주님의 임재안에서, 주님으로 우리의 영혼이 충만하게 하여주시옵소서.
  2. 주님안에 거하는 이 삶의 여정속에 주님을 바라보며, 온전히 주님을 의지하며, 정직하게 살아가기 원합니다. 주님 어느 상황속에서도 주님을 향해 우리의 시선이 고정되게 하여주시옵소서
  3. 마지막 특별히 우리 제자반을 비롯한 모든 훈련생들이 교회의 성도들이 주님 이 말씀을 기억하며, 주님의 임재를 구하며, 주님을 의지하며 살아가는 제자의 삶을 끝까지 겸손히 걸어가게 하여 주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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