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주간의 침묵 훈련 가운데....
항상 저에게 제자 훈련의 시간은 짧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실 긴 이야기 못하고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누어 주신 바 지침에 따라 간략하게 이야기 하느라 살짝 힘듭니다. 이야기 나눈 것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흠, 제자반 = 침묵 훈련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침묵 훈련 저에게 꼭 필요한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첫 주차 1과를 통해서 관계와 교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 길에 그 배운 것을 되새김질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삶을 떠올리며 과거에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는 했었는가? 왜 나는 교제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을까? 왜 교제를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또한 교제를 시작한 지금은 정말 제대로 된 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을까? 제대로 하는 교제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역시나 하나님은 아이들를 너무 좋아하는 저에게 이번에도 아이들을 통해서 아래의 방법들로 저의 아둔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반면교사 신공 : 귀여운 악마와도 같은 아이들. 아이들을 키우고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어찌그리 닮았는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의 어린 시절보다 다 양호한 친구들이라는 점이 유년부 교사를 하면서도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인내할 수 있음인가 봅니다.
역지사지 신공: 아이들에게서 숱하게 상처를 받고 있노라면 역시 아버지가 어린 시절 해주시던 말씀이 뼈에 사무치도록 아리게 다가옵니다. 아버지가 눈썹까지 희게 만들었던 저의 어린시절이. 그때 항상 아버지가 저에게 말씀하시길 "너도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한마디로 당해보라는 뜻이었던 것이죠. 아버지 역할 감당해 보니 만만치 않으며 앞으로 첩첩산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자식들을 이만큼 키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기도와 눈물을 흘리셨을지. 또한 참으로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배웁니다. 어찌 그리도 많은 배신의 모습을 보시고도 참고 또 용서를 해주셨고 해주시고 있으니 말입니다.
교제와 관련한 되새김 속에서 어김없이 하나님은 저에게 아이들을 통해서 나름의 이해를 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제하고 싶어합니다. 언제? 바로 놀고 싶을 때에 그리고 간절히 구하는 것이 있을 때에 더욱 교제를 활발하게 원합니다. 평소와 달리 살갑게 굴고 말도 많이하고 온갖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합니다. 언제까지? 바로 그들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까지죠. 그러나 반대로 부모들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하고 요구하게 되면 글쎄 자꾸 잔소리라 여기며 회피하려고 합니다. 짜증도 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대화는 단절되어 버리고 말 때가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조언을 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녀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조언을 하는 것 들이 어느 순간에 그들에게는 조언 = 잔소리 (사실 감정 섞인 잔소리일 때도 있음을 시인하지만)로 탈바꿈하고 교제는 상호 간에 고통의 시간으로 바뀌어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 점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에서도 별반 다른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모세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또한 바로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돕는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역시나 계속 자신의 어눌함과 부족함을 내세우며 회피하려 합니다. 하나님! 당연히 화나십니다. 능력보여주고 능력을 주겠다고 또한 능력있는 사람 붙여주겠다는 데도 피하기에 급급합니다. 아무래도 직분을 맡는 다는 것 누군가들의 앞에서 책임진다는 것은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으니까요.
아마도 저의 교제 기피 현상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듯 싶습니다. 자녀로써 누리고 싶은 것은 항상 구하나 자녀로서 해야 하는 의무는 잘도 회피하고 있는 것이죠. 바로 속되게 하나님과 잘못 말 섞었다가 나의 삶의 계획이 발목잡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는 무엇인가가 나의 삶에 있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진 않을까 하는 것이 즐거워야 할 교제를 두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요즘은 성경 속에 나왔던 인물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도망치는 요나, 모세,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담대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섰던 에스더...
제자훈련을 통해서 정말 변화되길 원합니다. 지금 나의 관심, 나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길 그저 소망하는 수준의 소극적 자세에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즐기고 또한 그 말씀에 나의 관심과 삶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제자반 10기 원재일
항상 저에게 제자 훈련의 시간은 짧게 느껴집니다. 그래서 사실 긴 이야기 못하고 오리엔테이션에서 나누어 주신 바 지침에 따라 간략하게 이야기 하느라 살짝 힘듭니다. 이야기 나눈 것을 좋아하는 저로써는 흠, 제자반 = 침묵 훈련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즐겁습니다. 침묵 훈련 저에게 꼭 필요한 훈련이기 때문입니다.
첫 주차 1과를 통해서 관계와 교제에 대해서 배웠습니다. 버스를 타고 출근 길에 그 배운 것을 되새김질을 해보았습니다. 그러면서 과거의 삶을 떠올리며 과거에 하나님과 교제를 하기는 했었는가? 왜 나는 교제를 별로 달가워하지 않았을까? 왜 교제를 위해서 노력을 하지 않았을까? 또한 교제를 시작한 지금은 정말 제대로 된 교제를 나누고 있는 것을까? 제대로 하는 교제란 과연 어떤 모습일까? 이라는 질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떠올랐습니다.
역시나 하나님은 아이들를 너무 좋아하는 저에게 이번에도 아이들을 통해서 아래의 방법들로 저의 아둔함을 일깨워 주셨습니다.
반면교사 신공 : 귀여운 악마와도 같은 아이들. 아이들을 키우고가르치면서 아이들의 모습에서 나의 모습을 볼 수 밖에 없습니다. 정말 스스로를 부끄럽게 만들 정도로 어찌그리 닮았는지요. 그래도 다행인 것은 저의 어린 시절보다 다 양호한 친구들이라는 점이 유년부 교사를 하면서도 아직까지 아이들에게 인내할 수 있음인가 봅니다.
역지사지 신공: 아이들에게서 숱하게 상처를 받고 있노라면 역시 아버지가 어린 시절 해주시던 말씀이 뼈에 사무치도록 아리게 다가옵니다. 아버지가 눈썹까지 희게 만들었던 저의 어린시절이. 그때 항상 아버지가 저에게 말씀하시길 "너도 자식 낳아서 키워봐라." 한마디로 당해보라는 뜻이었던 것이죠. 아버지 역할 감당해 보니 만만치 않으며 앞으로 첩첩산중이라는 느낌이 듭니다. 자식들을 이만큼 키우기 위하여 얼마나 많은 기도와 눈물을 흘리셨을지. 또한 참으로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배웁니다. 어찌 그리도 많은 배신의 모습을 보시고도 참고 또 용서를 해주셨고 해주시고 있으니 말입니다.
교제와 관련한 되새김 속에서 어김없이 하나님은 저에게 아이들을 통해서 나름의 이해를 주셨습니다. 아이들은 부모와 교제하고 싶어합니다. 언제? 바로 놀고 싶을 때에 그리고 간절히 구하는 것이 있을 때에 더욱 교제를 활발하게 원합니다. 평소와 달리 살갑게 굴고 말도 많이하고 온갖 그들이 할 수 있는 것을 다 합니다. 언제까지? 바로 그들의 목적이 이루어지는 그 순간까지죠. 그러나 반대로 부모들이 그들에게 무엇인가를 하기를 원하고 요구하게 되면 글쎄 자꾸 잔소리라 여기며 회피하려고 합니다. 짜증도 냅니다. 그리고 그것이 반복되면 결국 대화는 단절되어 버리고 말 때가 많음을 느끼게 됩니다. 물론 조언을 하기 위한 기술을 연마하는 것도 굉장히 중요한 것임에는 틀림없습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자녀의 삶에 도움을 주려고 조언을 하는 것 들이 어느 순간에 그들에게는 조언 = 잔소리 (사실 감정 섞인 잔소리일 때도 있음을 시인하지만)로 탈바꿈하고 교제는 상호 간에 고통의 시간으로 바뀌어 되어버리곤 합니다. 그 점이 나와 하나님과의 관계와 교제에서도 별반 다른지 않음을 깨닫게 됩니다.
출애굽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약속의 땅으로 인도하시려고 모세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또한 바로 앞에 나서는 것을 두려워하는 그에게 능력을 주시고 돕는 사람을 붙여주십니다. 그럼에도 모세는 역시나 계속 자신의 어눌함과 부족함을 내세우며 회피하려 합니다. 하나님! 당연히 화나십니다. 능력보여주고 능력을 주겠다고 또한 능력있는 사람 붙여주겠다는 데도 피하기에 급급합니다. 아무래도 직분을 맡는 다는 것 누군가들의 앞에서 책임진다는 것은 어려운 것임에 틀림없으니까요.
아마도 저의 교제 기피 현상은 여기에서 기인하는 듯 싶습니다. 자녀로써 누리고 싶은 것은 항상 구하나 자녀로서 해야 하는 의무는 잘도 회피하고 있는 것이죠. 바로 속되게 하나님과 잘못 말 섞었다가 나의 삶의 계획이 발목잡히는 것은 아닌가. 하나님이 나에게 바라는 무엇인가가 나의 삶에 있어서 절대 포기할 수 없는 무엇이진 않을까 하는 것이 즐거워야 할 교제를 두렵게 만들어 버리는 것이죠. 요즘은 성경 속에 나왔던 인물이 남의 이야기처럼 들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도망치는 요나, 모세, 처음에는 두려워했지만 담대히 하나님의 뜻에 따라 나섰던 에스더...
제자훈련을 통해서 정말 변화되길 원합니다. 지금 나의 관심, 나의 삶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길 그저 소망하는 수준의 소극적 자세에서 하나님의 말씀 듣기를 즐기고 또한 그 말씀에 나의 관심과 삶을 맞추려는 노력을 하는 적극적인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길 소망합니다.
제자반 10기 원재일